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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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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36.초월동조 36.초월동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오직 ‘조선독립’의 열망을 실천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초월동조(初月東照, 1878~1944)스님. 평소 지인들에게 “내 이 몸이 부서져 없어지는 한이 있어도 독립이 되도록 결심했다”고 의중을 밝힌 초월스님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어야 했..
[선지식]35.만해용운 35.만해용운 조선 말기에 태어나 일제강점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면서 민족의 미래를 제시했던 만해용운(卍海龍雲, 1879~1944)스님. 비록 난세에 머물렀지만 걸림 없이 살았던 대자유인이었다. 수행자이면서 독립운동가였고, 또한 명시(名詩)를 남긴 시인 만해스님의 삶을 비문과 각종 자료를 참고해 정..
[선지식]34.용악혜견 34.용악혜견 조선 건국 당시 창건된 안변 석왕사에 머물며 팔만대장경 유포의 원력을 갖고 남방으로 주석처를 옮긴 용악혜견(龍岳慧堅, 1830~1908)스님. 용악스님은 <금강경> 10만 편을 암송하는 등 교학을 깊이 공부했으며, 지극정성으로 수심(修心)하여 깨달음의 향기를 널리 전했다. 용악스님의 삶..
[선지식]33. 효동환경 33. 효동환경 효동환경(曉東幻鏡, 1887~1983)스님은 철저한 수행과 정진으로 귀감이 됐다. 또한 스님은 음양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해방 직후에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된 해인사 사명대사 비를 복원했다. 환경스님의 생애를 김연호 제천 진주동물병원장이 소장한 자료와 <남전선사문집> 등을 참..
[선지식]32. 진하축원 32. 진하축원 조선시대 숭유억불로 희미하게 이어진 불법(佛法)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더구나 나라가 혼란에 빠진 조선후기 불교 상황은 처참했다. 쓰러진 불교를 일으키고 혜명을 잇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진하축원(震河竺源, 1861~1925)스님. 선교율(禪敎律)을 겸비한 스님은 높은 수행력..
[선지식]31. 청담순호 31. 청담순호 평생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한 청담순호(靑潭淳浩,1902~1971)스님. 늘 가사를 수하고 육환장을 들고 대중을 맞이한 청담스님은 ‘수행자의 표상’이었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던 스님의 모습을 <아아 청담조사>와 비문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정리했다. “자비..
[선지식]30. 경봉정석 30. 경봉정석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조국해방,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중생들의 정신적 귀의처’ 였던 경봉정석(鏡峰靖錫, 1892~1982)스님. 수행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엄격했지만 한 없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대중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경봉문도회장 원산스님(전 교육..
[선지식]29. 효봉학눌 29. 효봉학눌 판사라는 ‘화려한 직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출가한 효봉학눌(曉峰學訥, 1888~1966)스님. 스님은 생사문제 해결을 위해 오직 참선수행에 몰두하며, 후학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했다. <효봉법어집>과 비문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효봉스님의 수행일화를 정리했다. “그대들은 밥도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