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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호암 약휴스님-배경생략 시선은 오른쪽 ‘독특’

 

호암 약휴스님-배경생략 시선은 오른쪽 ‘독특’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무너져 버려 폐허나 다름없던 순천 선암사를 여법한 도량으로 중창한 조선 중기 고승 호암 약휴(護岩 若休, 1664~1738)스님. 1664년 전남 순천 쌍암면 죽림동에서 태어난 스님의 속성은 오 씨, 본관은 해주, 법명은 약휴, 호는 호암이다. 1675년 12살의 나이로 선암사 경준선사에게 출가한 뒤 이듬해 침굉 현변선사에게 계를 받고 사미가 됐다.

            

     

무너진 선암사, 손수 중창 매진

 불화 속 맨발 두 손의 염주 눈길

       

스님은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35세의 나이로 선암사 주지를 맡게 됐다. 당시 스님의 최대목표는 선암사 중창이었다. 스님은 주지로 있는 동안 원통각을 새로 짓고 관음보살을 봉안했다. 또한 불조전을 짓고 그 안에 60불을 조성하는 한편 선암사 입구에 홍예교도 세웠다. 이어 선암사 3대 창건.중창조로 불리는 아도스님, 도선스님, 의천스님 등을 모시는 영각과 소요 태능스님, 침굉 현변스님 등을 모시는 영각을 각각 세워 제를 올리는 등 선암사의 사격을 일신했다.

<사진> 순천 선암사에 봉안돼 있는 약휴스님 진영.

약휴스님의 중창불사에 있어 배 바위(船岩)와 관련된 전설이 유명하다. 스승인 침굉 현변스님에게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다짐한 약휴스님은 불사를 위해 장군봉 아래 배 바위에서 100일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기도를 끝내고도 별 효험이 없다고 생각한 스님은 바위 밑으로 몸을 던지기에 이른다. 이 때 코끼리를 탄 여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스님을 받아 다시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이 여인이 관세음보살임을 깨달은 호암스님은 정자 모양의 원통전을 짓고 배 바위에서 친견한 모습대로 관세음보살상을 조성해 봉안했다. 이 불상의 영험함은 기도하는 사람마다 소원을 이루게 했고, 후사가 없던 조선 정조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려 순조를 낳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약휴스님의 진영은 스님이 중창불사에 매진했던 선암사에 봉안돼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진영은 스님이 의자위에 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그린 진영은 화면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측면으로 표현된 진영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진영은 드물게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면에 스님의 신발을 그리지 않은 점, 황갈색으로 전면을 채운 채 배경을 생략한 점,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염주를 잡고 있는 점 등도 다른 고승들의 진영에서 볼 수 없는 표현이다.

진영 우측 상단에 전당 혜근스님이 지은 찬문도 눈여겨 볼만하다. 4언 절구로 이뤄진 이 찬문은 약휴스님의 선암사 중창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 혜근스님의 활동연대로 볼 때 진영의 조성 시기는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36호/ 6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