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성 지안스님-학문의 깊이만큼 화려한 색채 ‘눈길’ |
벽면ㆍ의자 등 문양 세세히 표현 당시 화엄학의 최고봉이라고 평가받았던 모운 진언스님도 지안스님의 학식에 탄복해 제자들을 모두 그에게 맡기고 사찰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를 보면 스님의 학문의 깊이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후 지안스님은 경학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고, 전국에서 학인스님들이 모여들었다. 1725년(영조 1) 김제 금산사에서 화엄대법회를 열었을 때 1500여 명의 대중이 몰려드는 등 당시 승단의 규모를 감안하면 스님 강설에 대한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스님의 이러한 인기는 조정과 유생들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이는 곧 무고한 음해로 이어졌다. 조정에는 스님의 처벌을 주청하는 상소문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스님은 결국 1729년 귀향길에 오르게 이른다. 제주도로 유배된 지 일주일 만인 7월7일 법랍 51세, 세수 66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사진> 양산 통도사에 봉안돼 있는 지안스님 진영. 전체적인 구도는 안정적이지만, 안면의 표정이 굳어 심성표출을 중요시하는 초상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특히 진영에 ‘옥인’이라는 화승이 1799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는 화기 ‘(嘉慶四年己未仲夏 圖眞 良工玉仁)’이 남아있어 양식적 시대구분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환성스님 3대의 진영(喚惺三代影) / 4대 후손에 열었네(四大後孫開). / 천년 동안 고이 전해져(安位千세下) / 법손 무진토록 이어지리라(法孫濟濟來). / (진영의 조성은) 영월이 주간하였다(主幹影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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