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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침굉 현변스님-조선시대 수행자의 표상으로

 

침굉 현변스님-조선시대 수행자의 표상으로

조선시대 중기 수행자들의 지표가 될 정도로 철저한 정진을 펼치며 수행가풍을 크게 진작시킨 선지식 침굉 현변스님(枕肱 懸辯, 1616~1684). 현변스님은 조선조 광해군이 재위 당시인 1616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속성은 윤(尹) 씨, 자는 아눌(而訥), 법호는 침굉(枕肱), 법휘는 현변(懸辯)이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해 신동이라 불렸던 스님은 화순 만연사 탑암에서 13세 나이로 출가해 보광 건우선사, 서산대사의 수제자인 소요 태능선사, 송계 원휘선사 등과 당대 고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둥근 얼굴서 ‘후덕한 성품’ 엿보여

꽉 다문 입, 결연한 정진의지 전해


스님은 ‘침굉’이란 법호가 말해주듯 일생동안 팔꿈치를 베고 잠을 잔 스님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님은 “교를 버리고 참선하라(放敎參禪)”라며 참선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조선중기 문인 윤선도의 총애를 받을 정도로 교학에도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의 문학적 기질은 저서 <침굉집>에도 잘 나타나 있다. <침굉집> 원 목판본은 스님이 주지소임을 맡으며 주석했던 순천 산암사에 소장돼 있다.

<사진> 동국대 박물관 소장 침굉 현변스님 진영. 18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스님은 팔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항상 화두를 놓치지 않고 정진하다 1684년 세수 69세를 일기로 가부좌를 한 채 열반에 들었다. 스님의 유언에 따라 제자들이 법구를 금화산 징광사 바위틈에 모셨는데 이상하게도 새나 짐승이 달려들지 않아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3년 뒤 사중스님들이 회의를 열어 다비하고자 법구 주위에 둘러서자 스님의 법구가 저절로 불길에 휩싸여 연기와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스님의 진영은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진영은 현재 화면의 상당부분이 잘려나가고 얼굴부위만 남아있지만, 스님의 성품이 제대로 표현돼 있어 자료가치가 높다. 비단바탕에 그려진 진영은 바탕천에 가해진 착색이 자연스럽게 이뤄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8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좌측에는 ‘침굉당대선사지진영(枕肱堂大禪師之眞影)’이라는 방제(旁題)가 적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스님의 얼굴은 좌안 8분면으로 원형에 가까운 후덕하고 원만한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더불어 직시하는 날카로운 눈매나 유난히 큰 코와 귀, 굳게 다문 입에서는 치열한 구도정진을 해 오는 수행자의 결연한 의지를 돋보이게 한다.

비록 진영의 핵심을 이루는 안면묘사는 세밀하지 않고 윤곽만을 나타냈지만, 심성을 전달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뒤의 목살이 쳐진 표현은 다른 진영에서 거의 보기 드문 것으로 스님의 외관상 특징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색 승기지를 걸치고 있으며, 그 이하는 잘려나가 알 수 없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34호/ 6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