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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각민스님-구도의 길 내내 ‘下心’ 실천

 

각민스님-구도의 길 내내 ‘下心’ 실천


사명대사의 법맥을 이은 송파 각민스님(松坡 覺敏, 1596∼1675)은 조선시대 중기 대표적인 학승이다.

법호가 송파(松坡), 법명이 각민(覺敏), 속성이 노 씨인 스님은 출가한 뒤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공부했고 치열한 구도정진으로 깨침을 얻었다. 그래서 많은 학승들이 스님에게 가르침을 배웠지만, 정작 스님은 한 번도 자신을 다른 사람의 스승이라고 자처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 구도의 길로 나아갔던 스님은 하심(下心)을 실천한 고승이었음에 틀림없다.


학승들 추앙 불구 언제나 ‘겸손’

화폭 속 모습 온화한 자태 ‘눈길’



1596년(선조 29)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각민스님은 어려서 충청도 안찰사의 배려로 한학을 공부했지만, 이후 살림이 넉넉지 않아 치악산 각림사에서 사명대사의 사제인 한계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출가한 후 소요 태능스님을 비롯해 호구스님, 벽암 호연스님, 임성스님 등 당대 고승들의 문하에서 경전과 선을 배우며 수행자로서 기틀을 다져나갔다.

<사진> 김천 직지사에 봉안돼 있는 각민스님의 진영.

특히 무주 구천동에서 임성스님 아래서 7년 동안 유불도(儒佛道) 3교를 깊이 공부하면서 <해의(解疑)>라는 저술을 남기는 등 학문의 깊이를 더했고 이때부터 선지식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많은 이들이 스님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지만, 스님은 군림하지 않고 늘 겸손하게 하심으로 행동했다. 이후 10여년을 소백산 용문사와 해인사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는데 매진하다 1675년(숙종 1) 원적에 들었다. 입적한 후 스님의 비석은 조선 중기 문장가 이정구의 손자 이은상이 글을 지었고, 글씨는 왕실의 책문을 많이 썼던 명필 김우형이 썼다.

이러한 각민스님의 진영은 김천 직지사에 봉안돼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좌안칠분의 자세를 하고 있는 스님의 진영은 상하로 균등한 화면분할로 아래쪽 전부가 돗자리로 이뤄져 있어 화려함보다는 안정감을 더 중요시했다. 전체적인 색감이 부드러워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지만, 수척한 얼굴과 입가, 턱, 목 등에 주름을 깊게 표현하고 있어 스님의 나이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실제로 특정개인의 분위기를 짙게 풍기는 것으로 보아 이 진영 역시 이전에 그려진 작품을 보고 다시 그린 이모작(移模作)일 가능성이 높다.

진영에서 스님이 입고 있는 도포는 짙은 청색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밑으로 흘러내린 옷 주름은 날카롭게 각을 이루고 있는데 이 역시 다른 진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표현이다. 이와는 달리 오른손으로 염주, 왼손으로 석장을 들고 있는 모습은 보편화된 기법으로 그려져 있어 대조를 이룬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32호/ 6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