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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회암 정혜스님-교학의 빛나는 학식, 화폭에 ‘철철’

 

회암 정혜스님-교학의 빛나는 학식, 화폭에 ‘철철’


조선시대 선사인 회암 정혜스님(晦庵 定慧, 1685~1741)은 화엄학에 정통한 교학(敎學)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는 대강백이다. 스님의 법호는 회암, 법명은 정혜다.

168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정혜스님은 9살 나이로 출가해 가야산 등지에서 수학하다 호남의 여러 사찰을 순례했다. 그러다 해남 대흥사 5대 강사인 설암 추봉스님 아래서 수학한 후 다시 가야산으로 돌아가 교학에 매진했다. 이후 스님의 학문을 배우려는 학인들이 많아졌고, 1711년(숙종 37)부터 본격적으로 강석을 열었다. 그렇게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다 어느 날 문득 ‘남의 돈만 세주면 내게는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고 깨닫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참선에 몰두했다.

조성연대 18세기 중반 추정

젊은 모습 - 사각 얼굴 특징


치열한 수행과정을 거치며 스님은 다시 한 번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러한 깨침을 혼자 간직할 수 없었던 스님은 다시 안변 석왕사, 김천 석왕사, 예천 명봉사, 함양 벽송사 등을 돌며 후학양성에 나섰다. 특히 청암사에 머물며 현재 비구니 강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 당시 청암사에 운집한 학인의 수만 300명을 넘었고, 강백 함월스님도 스님을 찾아와 3번이나 수학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진> 김천 청암사에 봉안돼 있는 정혜스님 진영.

이후 만년에 다시 청암사에서 후학양성에 매진하다 1741년(영조 17) 입적했다. 경전을 연구하여 하나하나 철저히 소화했던 스님은 특히 화엄학에 밝았다. 저서로는 <화엄경소은>, <선원집도서착병>, <별행록사지화족>, <제경론소구절> 등이 있고, 현재 청암사에 스님의 탑비가 전해진다.

정혜스님의 진영은 강석을 열어 후학에 매진했던 청암사에 봉안돼 있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진영은 화가와 조성연대에 관한 화기가 없어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대략 18세기 중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스님의 얼굴은 입적한 나이보다 젊은 모습이며 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눈썹, 직사각형에 가까운 얼굴 등 특징적 요소들을 잘 포착해 표현했다.

조선 영조와 당시 영의정을 맡았던 문신 조현명(1690~1752)이 쓴 찬문도 이 진영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숭유억불 정책이 팽배했던 조선시대에 현직 재상이 스님의 찬문을 썼다는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조현명은 찬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얼굴이지만, 그대가 즐기고 좋아했던 정은 보이지 않는구나. 내 일찍이 그대가 기생들 노래 드높던 징청각(澄淸閣, 대구에 있던 조선시대 관아)의 잔치 때 만났었는데 그 때도 역시 이런 모습이었지. 이는 여래의 설법 자리에서 커다란 마음을 일으킨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라고 스님의 기품을 찬탄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40호/ 7월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