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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따뜻한 연말을 준비하는 사람들

 

따뜻한 연말을 준비하는 사람들

③/중앙종무기관 국장급 스님들

  추위 녹이는 보이지 않는 보시행
 
2005년 부터 십시일반 기금 모아
 
어린이.노인 보호시설 등에 전달
 
남이 알지 못하게 선행을 실천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밀행(密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밀행도 횟수가 늘어나고 도움의 손길이 넓어지면 결국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뒤늦게 알려진 숨은 선행은 연말이면 연례행사처럼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불우이웃돕기나 복지시설방문 기사들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조계종 중앙종무기관의 국장급 스님들이 몇 년간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남몰래 꾸준한 후원활동을 펼쳐왔다. 숨은 선행인 만큼 현장취재는 못했지만, 스님들의 밀행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수행과 포교는 출가한 스님들에게 새의 좌우 날개와 같아서 늘 실천해야 하고 없어서는 안 될 화두 같은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의 수행과 포교에 근거한 일상적 선행은 출가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의무로 받아들여져 세간에서는 관심 밖의 일이 되기 십상이다.
 
조계종 중앙종무기관(총무원, 교육원, 포교원) 국장급 스님들의 밀행은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됐다. 정확히 몇월 몇일부터 시작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원래 목적은 친목이었다. 재가종무원과 거의 비슷한 노동 강도를 갖는 국장급 스님들은 업무협조와 공유가 필요했고 그래서 모임이 결성됐다. 그런데 이왕이면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도 같이 하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결국 몇 차례 회의를 통해 25명이 넘는 국장급 스님들은 십시일반 회비를 걷고 업무 짬짬이 시간을 내어 아무도 모르게 선행을 베풀기로 결의했다.
 
우선 국장급 스님들은 매월 받는 중앙종무기관의 월급에서 일정액을 일괄 공제해 이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선정한 서울 종로구 관내의 불우어린이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또 불우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이나 군부대를 방문해 후원금을 전달하는 한편 김장 담그기 보조를 한다든가 격려 노력도 병행했다.
 
국장급 스님들의 선행은 주로 어린이보호시설에서 이뤄졌다. 조계종 총무원이 본격적인 어린이 포교 활성화에 의지를 세웠던 시기와도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스님들은 “처음에는 어린이 보호시설의 시스템과 교육시설에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횟수가 늘어나면서 “무엇이 보시행이고 앞으로 불교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절감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고 전한다.
 
스님들의 활동은 때론 오해를 사 재미난 추억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로 즉흥적 후원활동을 즐겼던 스님들은 지난 2006년 1월 우연히 인천 강화도에서 워크숍을 끝내고 서울로 들어오다 인근의 해병대 2사단을 보고 후원하고 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내 회비와 수중의 현금이 걷히고 행사기획과 연락책을 맡던 전 총무원 사회국장 혜용스님이 해당부대의 지휘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님들은 부대를 몰래 방문해 지휘관에서 후원금만 전달하고 나올 요량으로 다시 강화 해병대 2사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부대정문 앞에 도착한 순간 스님들은 깜짝 놀랐다. 연락한지 불과 1시간도 채 안됐는데 어떻게 알려졌는지 부대의 전 장병들이 정문 앞에 도열해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사단장이 직접 부대 밖까지 걸어 나와 영접해주고 간략한 부대 브리핑과 함께 사열에도 참여해 해병대 특유의 절도와 우뢰같은 박수로 융숭한 대접(?)까지 받았다. 스님들은 이날 얼떨결에 즉석 위문공연까지 벌여야 하는 즐거운 해프닝도 감내했다.
 
25명에 이르는 국장급 스님들은 올 연말에도 파주지역에 있는 한 군부대에 후원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혹 예전 같은 융숭한 대접이 나올까봐 국장급 스님들은 부대 지휘관에게 행사가 아님을 신신당부를 하고 있고, 또 기자가 취재를 해 “스릴 있는” 밀행의 기쁨을 깰까봐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 센스(?)도 발휘하고 있다. 스님들은 이제 국내를 넘어 몽골, 캄보디아 등 해외 불우시설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총무원 재무국장 원철스님은 “자칫 바쁜 업무로 인해 일상화되기 쉬운 모습을 환기시키고 반조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을 갖기 위해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오게 됐다”면서 “밀행을 통해 자타불이의 경지를 생각해보고 더욱 신심을 내어 발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재수 기자
   
[불교신문 2384호/ 12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