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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따스한 손 되게 하소서

 

“따스한 손 되게 하소서”

따뜻한 연말을 준비하는 사람들 ②

 

현장 서울 보훈병원 법당

선문스님 상주하며 포교

보은회 자원봉사 ‘일조’

 

서울 보훈병원 법당 주지 선문스님(가운데)이 임종을 앞둔 환자를 보살피고 있다.

 

서울 둔촌동에 위치한 보훈병원. 국가유공자와 그의 유가족들을 위한 진료기관이다. 지난 3일 오후 1시 무렵, 병원 1층 한편에 마련된 법당에서 나지막이 목탁소리가 들린다. 주지 선문스님과 자원봉사단체 보은회 회원 15명이 환자들을 문안하기 전에 조촐한 법회를 올리고 있다.

반야심경을 외우고 이어지는 ‘봉사자의 기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오늘 저희들은 병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과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모였습니다. …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원하옵나니 저희들의 말 한 마디는 힘들고 지친 영혼에 감로수가 되게 하시고 저희의 부족한 손길에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얹어주시어 따스한 치유의 손이 되게 하옵소서. 작은 선행은 행함조차 잊어버리고 더 많이 나누지 못함을 부끄럽게 하소서. … 모든 이가 불성을 가진 존엄한 생명체로 다른 몸을 가졌으나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잊지 않으며….” 구절마다 비장한 각오가 묻어난다.

보훈병원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유난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호스피스’ 체계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데다 한국전과 월남전 참전자, 심지어 독립지사들까지 초(超)고령자들이 입원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보은회의 봉사는 병실을 돌며 책들을 나눠주고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읽을거리엔 불교계 신문들도 끼어 있다. 지면에 실린 교리와 법문이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좋은 말씀은 얼마 남지 않은 삶에 위안을 준다.

선문스님이 ‘호스피스실’에서 환자들의 손을 잡고 말을 건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오늘 기분은 어떤지, 가족들은 다녀갔는지, 소소한 신변에 관한 이야기다. 병상에 누운 노인들은 신음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거의 모든 감각을 죽음에 헌납한 채 옹알이로만 스님을 반긴다. 얼어붙은 입에서 인생의 겨울을 느낀다. 스님은 “호스피스실에 있는 환자들은 자기가 머지않아 죽을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더 이상 해 줄 것은 없다고 솔직하게 밝힙니다.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다만 기도하라고. 마지막까지 열심히 기도하라는 격려만이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보시입니다.” 문안은 병실을 일일이 돌며 2시간 동안 이어진다. 환자가 많으면 오후 5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보은회는 동지인 오는 22일 환자들에게 팥죽을 공양하고 문화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고작 15명이 350인분의 팥죽을 만들어야 하는 고역이지만 호스피스 환자들에겐 이번 생에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기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다.

선문스님은 지난 2006년 2월부터 병원 법당에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도심 속 강원’인 서울 동선동 삼선승가대학 중강(부교수)도 맡고 있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교계의 무관심으로 특별한 후원을 받지 못한 채 법당의 불전함 수입만으로 근근이 운영한다. 그러나 속가 부친이 암으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세운 원력이 있어 일을 그만 둘 엄두도 못 낸다. “임종을 앞둔 노인들이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늘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보은회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교육받은 전문 자원봉사자들이다. 순번을 짜서 매주 월 수 금요일마다 보훈병원의 환자들을 찾아 나선다. 황미연 팀장은 10년 동안 간병해 온 베테랑이다.

“아픈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보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계기가 된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한다. 이들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 병자들의 겨울은 그리 쓸쓸하지 않다.                 

장영섭 기자

 

[불교신문 2383호/ 12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