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얘기

‘10.27법난 조사결과, 나는 이렇게 본다’ ②

 

‘10.27법난 조사결과, 나는 이렇게 본다’ ②

당시 보문사 주지 정수스님

 

“10.27법난의 몸통이 전두환씨라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이번 조사결과에서도 이를 명백히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니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법난 피해자와 불교계에 대한 진정한 명예회복은 가해 당사자의 진심어린 참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현대사 초유의 종교유린 사건인 10.27법난 당시 강화 보문사 주지소임을 맡다 인근 해병대 보안부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정수스님은 국방부의 조사결과에 대해 “책임자 규명이 미흡하다”며 이 같이 아쉬움 토로했다.

 

“세상이 다 아는 ‘몸통’ 왜 못 밝히나”

  막무가내 연행 전기고문…아직도 약 의존 ‘후유증’

 “가해 책임자 진심으로 참회할 때 진정한 명예회복”

지난 10월31일 오후 서울 화계사 한 켠에 자리 잡은 요사채에서 만난 정수스님은 한 눈에 보기에도 기력이 많이 쇠잔해 보였다. 올해로 일흔을 넘긴 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방 안에 싸여있는 약봉지들이 말해주듯 스님은 당시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스님은 “벌써 27년이 지난 일이지만, 당시 신군부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진다”면서 “세상과 인연의 끈을 놓는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몸서리치며 어렵게 말문을 이어갔다.

정수스님은 지난 1980년 10월27일 오전 지방에 가기 위해 보문사를 나선 후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인근 해병대 보안대장에게 강제로 연행됐다. 영문도 모른 채 해병대 헌병대로 끌려간 스님은 곧바로 군복으로 갈아입혀진 후 이튿날부터 갖은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사진> 지난 10월31일 서울 화계사 요사채에서 만난 당시 보문사 주지 정수스님이 10.27법난의 상처를 털어놓고 있다.

당시 군인들이 스님에게 자행한 고문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코와 입에 고춧가루와 빙초산을 섞은 물을 붓거나 양 손목과 양 발목을 노끈으로 감은 후 전기를 통하게 하는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스님은 그 과정에서 몇 차례 실신했지만, 군인들은 물을 끼얹으며 다시 고문을 이어갔다고 한다.

밤에는 잠을 안 재우며 고문과 자술을 강요했다. “고문 기술자로 보이는 영관장교가 오더니 ‘50억을 횡령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바른대로 말하라고 윽박지르며 각목으로 온 몸을 때리더니 전기고문까지 하더군요. 몇 번을 실신했는지 모릅니다. 고문을 못 이겨 결국 보문사 주지 소임을 내놓는다는 각서를 썼죠.”

스님은 해병대 구치소에서 한 달여 동안 고문을 당한 후 안양 수도군단 헌병대를 거쳐 다시 안양교도소로 이감돼 20여 일 동안 구금생활을 하는 등 출가 수행자로서 견디기 힘든 고초를 겪었다. 스님은 결국 해병대에 연행된 지 두 달 여 만인 그해 12월 중순께 군사재판을 통해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로 인해 스님은 고문후유증을 심하게 앓았고, 현재는 거동조차 힘겨운 상태다. “당시 겪었던 육체적 고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수행자로서 받은 마음의 상처”라고 토로한 정수스님은 “가해 당사자의 진정한 사과만이 이러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374호/ 11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