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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녹야원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녹야원

인류의 無明 밝힌 ‘위대한 가르침’ 첫 설법

 

밤 10시, 일행을 태운 성지순례전용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온통 어둠이다. 멀리 하나, 둘 보이는 불빛보다 하늘의 별이 더 많이 보인다. 별 가운데 가장 위대한 별은 인류가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한 부처님이 아니었을까. 새벽이 다가오자 열차는 바라나시역에 다다랐다. 부처님의 법륜이 시작된 곳, 녹야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인도 바라나시에 위치한 녹야원터에서 외국인 스님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초전법륜지 녹야원은 13세기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현재는 유적만 남아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49일간의 선정에 들었다. 그리고 고민을 했다. 당신이 성취하신 ‘위없는 깨달음을 중생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범천이 현신해 부처님께 세 번에 걸쳐 ‘중생을 위해 법문을 하여 줄 것’을 간청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기로 뜻을 세우고 첫 설법의 대상으로 떠올린 것은 고행 당시의 스승이었던 아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라였다. 하지만 천안통으로 바라보니 그들은 이미 죽은 후였다. 나이란자나 강가에서 헤어진 다섯 사문을 떠올린 부처님은 280km 거리를 걸어 사르나트에 당도하셨다. 몇 날을 걸어온 길을, 기차로 하룻밤에 이동한 것이다.

녹야원으로 가는 입구에는 5비구가 부처님을 맞이한 장소에 야쇼카왕이 건립했다는 거대한 불영탑(佛迎塔, Chaukhandi Stupa)이 있는데, 그 형상이 특이했다. 사암을 재료로 층층히 쌓은 탑 꼭대기에 이질적인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슬람 세력이 탑 정상에 사원을 세운 것”이란다. 불교보다 이슬람이 위대하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죽림정사에 이슬람인의 무덤을 만들더니, 문화재를 파괴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구나 생각이 든다. 그런다고 역사가 뒤바뀌는 것도 아닐터인데.

다섯비구에 ‘위없는 깨달음’ 전한 곳에 다메크大塔

아쇼카왕 불영탑-석주등 세워 초전법륜지 ‘聖地’로

녹야원 인근에 건립된 사찰에 들어서자 하얀 옷을 차려입은 100여명의 신도들이 예불의식을 올리고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성지순례 차 온 불자들이다.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든 강한 햇살에도 아랑곳 않고 기도에만 열중하는 백의의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극한 신심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평온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가 보다.

법당을 돌아서자 부처님께서 오비구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의 이치를 깨우쳐라. 중도에 이르려면 팔정도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다섯 비구는 깨우침을 얻고 첫 제자가 된다. 이로써 초기승단이 이뤄졌다. 오늘날까지 수백억 인류를 교화한 위대한 가르침이 시작된 것이다.

사찰을 나와 다메크 대탑으로 향했다. 다섯비구에게 최초로 설법한 장소에 세웠다는 다메크 대탑((Dhamekh Stupa)은 붉은 벽돌을 구워 쌓았는데, 지름이 28.5m, 높이 40.06m에 달한다. 마우리아왕조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1층에는 화려한 연꽃문양 등이 새겨져 있고, 중간 중간에 8개의 감실이 위치해 있다. 8정도를 의미하는 8개의 감실마다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을 터지만, 지금은 빈 공간만이 순례객을 맞는다.

8세기 초 이곳을 순례한 현장스님은 <대당서역기>에서 “30m 높이의 정사(精舍)가 하늘 높이 솟아있고, 그 주위에 100여 단이나 되는 감실에 황금불상과 부조가 있으며, 스님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얼마나 큰 규모의 사원이었는지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찰 터만 남았고, 아쇼카왕의 석주마저 파괴돼 2m 정도의 기단부분만 남아있다. 다행히 1905년 땅속에 파묻혀 있던 4마리의 사자머리 부분이 발견돼 현재 사르나트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기념해 세운 다메크 대탑(Dhamekh Stupa).

일행 중 한명이 초와 향을 준비해왔다. 하나씩 건네받아 다메크 대탑 앞에 올리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탑을 한바퀴 돌았다. 많은 사슴이 있을 것이란 ‘착각’이 빗나가자 서운함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전에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글에서 간혹 사슴 이야기를 읽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일행의 눈에는 사슴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길가에는 개와 소, 돼지들만 유유히 먹이를 찾아다니며 거닐고 있었다.

녹야원은 사슴공원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이는 부처님의 전생담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출요경>의 사슴왕 이야기가 그것이다. 과거에 사르나트에 두 마리의 사슴왕이 있었는데 각각 500마리의 사슴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라나시 국왕이 자주 사슴사냥을 해 많은 사슴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러자 사슴왕이 국왕을 찾아가 간청을 한끝에 ‘매일 한마리씩 순서를 정해 왕에게 받쳐지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 새끼를 배고 있는 어미사슴의 차례가 됐다. 어미 사슴은 자기들의 왕인 데바녹왕을 찾아가 순서를 바꿔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다른 사슴왕인 보살녹왕을 찾아갔다. 이에 그 사슴왕은 “아, 태어나지도 않은 새끼에까지도 어미의 은혜가 미치고 있구나. 내가 오늘 너 대신 죽겠노라”고 말하며 스스로 바라나시왕을 찾아갔다.

제 차례도 아닌 사슴왕이 자진해 찾아온 것을 본 왕이 그 연유를 물었고, 전후 사정을 전해들은 왕은 사슴왕의 자비심에 감동을 받아 앞으로 사르나트에서 사슴을 잡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게 됐다. 그 사슴왕 이야기가 부처님의 전생담이다.

사르나트 스리랑카 사찰에 조성된 초전법륜상.

초전법륜성지를 떠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지나치리만큼 꼼꼼한 몸수색을 마치고 문을 들어서자 거대한 ‘아쇼카왕 사자상’이 시선에 꽂힌다. 그 화려하면서 섬세한 조각이 인도인의 솜씨라고 선뜻 믿음이 안 가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일까. 굽타시대, 간다라 미술 양식 등을 한눈에 볼수 있는 각종 미술품이 박물관에 가득했다. 사진을 못 찍게 하니, 결국 유물을 보려면 인도를 가는 수밖에 없다.

오후,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인도인들의 정신적 귀의처인 갠지스강의 인도식 이름은 ‘강가’강이다. 강가를 따라 세워진 각종 힌두사원, 그리고 각종 종교의식을 하는 사람들. “아마 화장장을 관광지로 개발한 곳은 인도가 유일할 것”이라는 농담을 하며 나룻배를 타고 강을 한바퀴 돌았다.

섭씨 50도를 육박하는 건기를 겪어야 하는 인도인들에게 물이 주는 소중함은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강은 인도인들에게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으며, 인도의 중심을 흐르는 갠지즈강은 정신적, 사상적 중심지로 발전해 왔을 것이다. 2600여 년 전, 깨달음을 얻은 30대 중반의 젊은 수행자가 이곳을 찾아 수많은 사상가들과 논쟁을 펼치며 불법을 세웠을 때. 그 장엄했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인도=안직수 기자 jsahn@ibulgyo.com

 

◆ 성지순례시 주의하세요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인도는 우리나라와 달리 치안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또한 우리와 생활, 경제 습관이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번에 개통된 성지순례전용열차는 인도정부가 안전을 책임지고 있지만, 바라나시는 많은 외국인과 인도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치안 불안…가짜유물 조심

낯선 사람의 친절도 ‘경계’

무엇보다 낯선 사람의 친절은 경계의 대상이다. 일행보다 10여일 일찍 인도에 도착해 여행중이라는 한 사람은 3일 정도 같이 여행하던 네팔인이 주는, 약을 탄 음료수를 마셨다가 돈과 카메라를 잃어버렸단다. 기차표나 호텔 예약 등을 도와준다며 여행사 간판이 있는 건물에 데려가 돈을 몽땅 빼앗기도 한단다. 또 여행 중 건전지를 구입했는데, 폐건전지를 포장해 파는 물건이라 낭패를 보기도 한다.

성지 근처에는 물건을 파는 아이들이 많은데, 간혹 성지에서 발굴한 유물이라며 슬쩍 유물을 보여주고 비싼 값을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역시 가짜가 많다.

[불교신문 2374호/ 11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