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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환성 시헌스님 - 대강백의 넘치는 기운 ‘그윽’

 

환성 시헌스님 - 대강백의 넘치는 기운 ‘그윽’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가 다시 태었다는 칭송을 들었을 정도로 교학에 밝았던 조선후기 고승 환월 시헌(幻月時憲, 1819~1881)스님. 한국 역대 고승들의 전기를 담아 정리한 <고승열전>에 환월스님의 행장이 소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스님의 속성은 진주 강씨로 1819년 전라남도 순천 장평면 인제리에서 태어났다. 스님은 14살의 나이에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했고, 침명스님에게 선교를 배웠다. 이후 계봉스님의 법맥을 이어 24살부터 선암사에서 학인들을 가르쳤다.

초상화 대신 ‘위패’로 표현

다채로운 무늬 색깔 ‘눈길’


스님은 선암사 이외에도 황해도 구월산 패엽사, 월출암 등에서 정진하기도 했다. 스님은 이곳에서 3년 동안 문밖에 나오지 않고 <화엄경> <법화경>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하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쉼 없는 정진으로 스님은 <법화경>에 달통한 대강백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일생을 설법과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교학으로 한국불교사에 족적을 남긴 환월스님의 진영은 선암사에 모셔져 있다. 이 진영은 스님들의 모습을 그린 것과 달리 위패(位牌)를 한 가운데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사진> 순천 선암사에 모셔져 있는 환월 시헌스님 진영.

보통 진영을 말할 때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 넣는 초상화 형식을 떠올리지만, 위패를 그린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진영에 속한다. 이는 선가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선종에서는 일체의 상(像)을 허상이라 여기고 그것에 결코 미혹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여 진다.

조선중기 이전에 고승 진영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다 조선중기를 거쳐 후기로 넘어가면서 선종에서도 법맥을 중시하는 풍조가 자리 잡게 되면서 선사와 스승의 모습을 담아 후세에 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초상화 형식의 진영이 활발하게 그려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특히 이 진영은 위패를 그린 진영 가운데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그림 중앙에 큰 위패를 배치했고, 주변 공간을 장식하는 다채로운 무늬와 색깔도 다른 작품에 비해 깔끔하고 회화적이다. 화면 아래에 파도를 그리고 그 안에 물고기를 그려 바다를 상징했다. 바다에 피어오른 연꽃은 위패 주변을 감싸고 있다. 위패는 청색으로 테두리가 되어 있고 바탕은 주홍색, 글씨는 금색으로 ‘幻月堂大宗師眞(환월당대종사진)’이라고 쓰여져 있다. 위패 오른쪽에는 사슴 한 마리가 입에 영지를 물고 위패를 바라보고 있다. 위패 위에 있는 탁자도 눈여겨 볼만하다. 탁자 위에는 커다란 필통이 놓여 있고 그곳에 붓, 두루마리 종이 등이 꽂혀 있다. 이는 스님이 학문에 힘썼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식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자료참조=<진영과 찬문>(도서출판 혜안)


[불교신문 2476호/ 11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