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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용암 채정스님 - ‘꼿꼿한 기개’ 살아날 듯

 

용암 채정스님 - ‘꼿꼿한 기개’ 살아날 듯


화엄학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는 회암 정혜(晦庵 定慧, 1685~1741)스님의 직계제자로 스승을 이어 김천 청암사 강원에서 대강백으로 활약했던 조선후기 고승 용암 채정(龍巖 彩晴, 1692~1754).

스승인 회암 정혜스님의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1744년 <회암대사 행적(晦庵大師行蹟)>을 정리해 발간한 채정스님은 청암사에 강석을 열고 일생을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정혜스님 사상’계승위해 온힘

 공덕 읊은 이원조 찬문 ‘눈길’

청암사는 원래 모운 진언스님이 처음 강원을 개설한 이래, 회암 정혜스님-용암 채정스님-취봉 진철스님, 모암 체규스님-포봉 일오스님-금명 오우스님- 화운 관진스님- 대운 병택스님- 한영 정호스님-고봉 태수스님 등과 같은 대강백이 강석을 펼친 경학도량이다. 현재 청암사가 청도 운문사, 공주 동학사, 수원 봉녕사 등과 함께 사미니 강원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고승들의 뒷받침과 역사적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김천 직지사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용암 채정스님 진영.

1754년(영조 30) 입적한 용암스님을 기려 제자들은 스승인 회암스님의 부도가 있는 불령산 기슭 아래에 부도와 부도비를 모셨고, 이는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이처럼 청암사를 비롯해 한국불교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용암스님의 진영은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돼 있다. 좌측 상단에 ‘용암당대선사채정지진영(龍巖堂大禪師彩晴之眞影)’이란 제목이 쓰여 있는 스님의 진영은 비단에 66.5×101cm 규모로 조선후기에 조성됐다.

이 진영에서 용암스님은 스승인 회암스님만큼 젊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다른 고승들의 진영과 마찬가지로 오른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다. 또한 두 손은 주장자와 염주를 쥐고 있다.

이와 함께 진영 제목 바로 옆에 조선 철종때 대사간과 공조판서를 지낸 문신 이원조(李源祚, 1792~1872)가 지은 찬문이 적혀있다. 이원조는 찬문을 통해 “있되 없는 것은 스님의 형상이요(有而無者 師之形), 없되 있는 것은 스님의 정신이라(無而有者 師之神). 스님을 알고자 하는가(欲知師 求之於形) 형상과 정신의 밖,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구할지어다(神之外 有無之間). 승지 이원조가 찬하다(承旨 李源祚 贊)”라고 스님의 높은 공덕을 기렸다.

이원조는 청암사에서 가까운 성주의 성산이씨 집성촌인 한개마을 출신으로 용암스님의 진영을 포함해 모암스님, 사송스님, 설악스님, 취봉스님의 진영에도 찬문을 남겼고, 1854년(철종 5)에는 ‘청암사 중수기’를 짓기도 했다. 중수기에는 현존하는 진영들의 제작연대를 가늠할 수 있는 “영각을 건립하고 회암 정혜 이하의 모든 스님의 진영을 불사르고 다시 그려 봉안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 청암사 진영 가운데 회암스님과 여러 스님의 진영들이 19세기 중반에 새로 고쳐 그려졌음을 가늠할 수 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사진제공=한국고승진영전 도록 <깨달음의 길을 간 얼굴들>(직지사성보박물관)


[불교신문 2472호/ 11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