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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웅파 위성스님 - 불교계 높은 신망, 그림속 선연

 

웅파 위성스님 - 불교계 높은 신망, 그림속 선연


조선후기 방장(方丈) 등을 역임하며 당시 불교계로부터 높은 신망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잊혀진 고승 웅파 위성(雄坡 偉性)스님. 웅파스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생몰연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동사열전>에 따르면 환성 지안스님으로부터 이어지는 법맥에서 7세손으로 스님을 소개하는 것으로 볼 때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고승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 부분으로 나뉜 배경 독특

‘용두 주장자’ 스님 위치 가늠


경기도 용인 소재 호암미술관에 모셔져 있는 스님의 진영에 쓰여 진 찬문으로 당시 스님의 행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찬문은 조선후기 문신 이익회(1767~1843)가 지은 것이다. 조선 헌종때 한성부 판윤을 역임한 이익회는 찬문에서 스님이 이룬 높은 경지와 평소 불교계의 어른으로서 후학들에게 법문을 설하던 모습을 산문형태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진> 용인 호암미술관에 봉안돼 있는 웅파 위성스님 진영.

“선정과 지혜의 힘으로 구족상을 감추고서 늙은 솔 흐르는 물 사이에서 지내니 이 또한 웅파스님의 한 모습이요, 장광설로 위 없는 법을 설해 방장의 고비 위에 앉은 것도 웅파스님의 한 모습이로다. 내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모르겠으되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늘 숨겨져 있되 언제나 드러나 있네. 성문과 색상의 경지를 벗어난 곳에 참된 웅파스님은 있으리라. 시험 삼아 묻노니, 제방의 선지식들은 알겠는가? 알지 못할 때는 통렬하게 한 방망이를 내릴 것이요, 알 때에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리라. 이 진영에 전당향과 우란화로 공양하노라. 갑신년(1824) 늦봄 화산의 병든 늙은이 이익회 써서 주다.”

1824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진영은 전체적으로 안료의 탈락이 심하고 색이 바래있는 등 보관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구도는 주인공이 화면 비스듬히 앉아서 오른쪽에서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의자가 아닌 바닥에 깔린 돗자리에 앉아 있는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있지만, 주인공의 모습이 화면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또한 약간 가늘지만 초롱초롱한 눈, 큰 코, 튀어나온 광대뼈 등은 스님의 얼굴을 개성적으로 표현했다.

이와 함께 크게 두 부분으로 배경을 처리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허리아래는 돗자리이고, 그 위는 빈공간이다. 빈 공간은 제명과 찬문을 제외하고 모두 녹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는 다른 진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점이다. 또 주인공이 들고 있는 주장자의 머리는 용두장식으로 표현됐다. 진영에서 볼 때 대체로 승계가 높은 스님이 이 같은 용두 주장자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이를 통해 웅파스님의 당시 불교계로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74호/ 11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