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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성담 의전스님-스님의 높은 공덕, 화폭 빛내다

 

성담 의전스님-스님의 높은 공덕, 화폭 빛내다


“입은 보름달처럼 둥글고(面門月滿), 머리꼭대기는 피어난 꽃 같구나(頂輪花現). 아, 아! 성사여(噫噫聖師). 구부정한 그 모습에선(宛基在慈) 가히 노인의 모습은 없고(可以塞老), 맑은 자비심만 보이누나(淸之悲歟). 이것이 곧 대자비심일진저(是大悲相歟). 문자 서로 승하여(文字勝若) 마치 빛이 뿜는 듯하네(互攝發光).”

 

조선시대 고승진영의 ‘전형’

짧은 다리 의자 형태 이례적



조선후기 양산 통도사에서 선교에 밝아 대강백으로 이름을 떨쳤던 고승 성담의전(聖潭儀典, ?~1854)스님. 추사 김정희는 수행자로서 높은 공덕을 갖췄던 의전스님을 이같이 찬탄했다.

스님의 법명은 의전(儀典). 성담(儀典)은 법호이다. 의전스님에 관한 자료가 많지않아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고 19세기 초중반 통도사 일원에서 활동했던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은 어릴 때부터 불교를 공부해 소년시절 입산해 출가했다. 불교공부는 물론 도가, 유가경전까지도 두루 섭렵했다. 이후 당시 이름난 영호남 지역의 강백과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선교의 깊은 뜻을 배웠다. 결국 스님은 끝없는 정진으로 전국에 널리 명성이 알려지게 됐다.

<사진> 양산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성담 의전스님 진영.

특히 유교와 문장에도 능해 많은 유학자들이 스님을 한 번 만나보기를 원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와 조선후기 영의정을 지낸 문신 권돈인 등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이처럼 조선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의전스님의 진영은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스님이 입적한 1854년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진영은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6년 11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50-15호로 지정됐다.

스님이 좌안7분면의 전신교의가부좌상을 하고 있는 이 진영은 당시 고승진영 양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만큼 구도가 매우 전형적이다. 화면에 꽉 차게 의자에 앉아 있는 주인공을 배치했는데, 의자는 다른 그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다리가 긴 의자가 아닌 다리가 짧은 의자다. 진영에서 이러한 형태의 의자가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또 스님 앞에는 작은 서안(書案)이 있고, <범망경> <유마경> <은중경> 등 4권의 경전이 놓여있다. 회색장삼에 붉은색 가사를 입고 있는 스님은 왼손에는 주장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앞에 놓여진 서안 위에 올려놓고 있다. 주장자와 서안바닥의 장식무늬가 똑같은 것도 이색적이다. 진영 왼쪽상단에 스님과 교분이 두터웠던 문신 권돈인이 쓴 찬문도 눈에 띈다. 찬문 끝에 ‘우랑’, ‘이재’라는 권돈인의 호가 낙관되어 있다. 권돈인은 찬문에서 “성담스님은 고요히 침잠하여 잔잔한 연못처럼 과묵했지만, 그 깊은 곳에서는 부처의 뜻을 잘 좇아 내전을 명철히 익혔다. 문인들과도 교우하여 나는 불가의 의탁해 스님과 우의를 쌓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66호/ 10월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