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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화담 경화스님-화엄학 대가의 풍모 ‘선연’

 

화담 경화스님-화엄학 대가의 풍모 ‘선연’


서산대사의 8세 법손으로 조선후기 화엄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대표적인 학승 화담 경화스님(華潭 敬和, 1786~1848).

경화스님은 1786년(정조10)은 밀양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법호는 화담(花潭), 속성은 박(朴) 씨다. 어려서부터 마늘, 부추 등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스님은 1803년(순조3) 18세 나이로 양주 화양사에서 월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어 지리산에서 정진한 후 청고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지탁스님의 법을 이었다.

책장 넘기는 모습서 ‘학승’표현

강한 인상, 수행자 정신 배어나


휴정-편양-풍담-월담-환성-완월-한암-화악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스님은 이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통해 수행에 매진하고 교학에도 힘썼다. 특히 스님은 <화엄경>을 83차례 강설했다고 전해질 정도로 화엄학에 밝았다. 또한 선교겸수(禪敎兼修)뿐만 아니라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켜 율사로도 이름이 높았다. 전국을 돌며 대중들에게 불교를 알리고 화엄을 강설했던 스님은 문장에도 조예가 깊어 당시 유학자와 사대부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사진> 문경 김룡사에 봉안돼 있는 화담 경화스님 진영.

서울 봉은사의 조실을 지내기도 한 스님은 만년에 가평 현등사에 주석하며 후학을 가르치며 수행에 전념하다 1848년(헌종 14) 2월 세수 63세, 법랍 45년을 일기로 입적에 들었다. 그 해 10월 현등사에는 스님의 부도가 세워졌다. 저서로는 <천지팔양신주경주> 1권이 있으며, 그 목판본이 서울 봉은사 판전에 보관돼 있다.

화담스님의 진영은 양산 통도사, 문경 김룡사, 밀양 표충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모셔져 있다. 각 진영마다 화풍, 영제(影題), 제찬자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 가운데 김룡사에 봉안돼 있는 스님의 진영에는 대종사에게 내려지는 ‘전불심인부종수교일국명현(傳佛心印扶宗樹敎一國名現)’이란 존칭과 대강백을 일컬었던 ‘화엄대법사(華嚴大法師)’라는 칭호가 적혀 있다. 또 진영 오른편에는 법제자인 혜소스님이 화담스님의 행장을 함축해서 지은 제찬이 적혀 있다.

이 진영에서 스님은 스승인 화악스님의 진영과 마찬가지로 정면을 바라본 채 가부좌를 한 자세로 앉아 있다. 얼굴은 마치 가슴 위로 올려놓은 듯 목을 표현하지 않아 어색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표현은 주인공이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과 경상 위의 서책을 본다는 두 가지 시점을 함께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 책이 <화엄경>으로 보이며, 이는 스님이 평생을 화엄학을 연구한 대가라는 사실을 나타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면을 응시하는 날카로운 눈, 오똑한 콧날, 고집스럽게 다문 입 등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스님의 얼굴은 수행자의 올곧은 의지와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62호/ 9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