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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해붕 전령스님-오른쪽 구도ㆍ주장자 왼손 독특

 

해붕 전령스님-오른쪽 구도ㆍ주장자 왼손 독특


“기억해보면, 해붕스님의 눈은 가늘고 눈가에 점이 있었으며, 눈동자는 푸른빛이 도는 것이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비록 이미 스님은 다비하였고, 그 재도 식었지만 그 눈동자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尙記鵬眼細而點 瞳碧射人 雖火滅灰寒 瞳碧尙存).”

선교에 능통하고 문장에 뛰어났던 조선후기 고승 해붕 전령스님(海鵬 海鵬, ?~1826). 추사 김정희는 해붕스님의 높은 공덕을 이 같이 찬탄했다.

가사 신발 의자 등 평면적 표현

스님 공덕 기린 김정희 찬문 눈길


해붕스님은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어렸을 때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는 바는 없지만,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해 당대 고승 묵암 최눌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의 법호는 해붕(海鵬), 법휘는 전령(海鵬), 자는 천유(天遊)다.

스님은 선과 교는 물론 문장에도 실력이 탁월해 당시 초의선사, 노질, 이학전, 김각, 이삼만, 심두영 등과 더불어 ‘호남의 일곱 명의 벗(湖南七高朋)’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사대부 문인 못지않게 문장에 뛰어났던 스님은 백곡 처능스님, 무용 수연스님과 더불어 조선후기 스님 가운데 3대문장으로 꼽힌다. 김정희와는 두터운 친분을 나눴다.

<사진> 순천 선암사에 봉안돼 있는 해붕스님 진영.

1823년(순조23)의 화재로 선암사가 큰 피해를 입자 스님은 노구를 이끌고 익종스님 등과 함께 중창불사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1826년 스님은 열반에 들었다. 스님의 저서로는 <장유대방록>1권이 전해지고, 부도는 선암사에 모셔져 있다.

해붕스님의 진영 역시 선암사에 봉안돼 있다. 이 진영은 문장으로 두터운 교분이 있던 김정희기 직접 쓴 찬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김정희가 찬문 끝에 남긴 ‘七十一果(칠십일과, 과천에 사는 일흔한 살의 늙은이)’라는 호는 71세인 1856년에 사용한 것으로 이를 통해 진영의 정확한 조성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김정희는 죽기 수개월 전에 쓴 찬문에서 스님의 높은 공덕을 높이 평가했다.

이와 함께 이 진영은 구도에서도 남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진영은 스님의 자세가 정면에서 봤을 때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을 향하고 있지만, 해붕스님의 진영의 경우 그 반대로 되어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또 다른 진영들은 대체로 주장자나 불자를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진영은 왼손으로 잡고 있는 점도 눈에 다른 점이다.

스님은 진영에서 평소 특징을 부각하기보다는 매우 평면적으로 표현됐다. 스님의 가사, 신발, 의자, 주장자 등도 실감나지 않고 모두 평면화 돼 있다.

이밖에도 진영 외곽에는 김정희 찬문 외에도 전당 혜근스님이 지은 또 다른 찬문이 실려 있다. 이는 1892년 선암사에서 여러 점의 조사 진영을 조성할 때 적어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참고자료=<진영과 찬문>(도서출판 혜안)


[불교신문 2459호/ 9월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