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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정면 응시하는 모습 ‘독특’- 화악 지탁스님

 

정면 응시하는 모습 ‘독특’- 화악 지탁스님


“사미 때 스님을(지탁스님) 금강산 유점사에서 뵈니, 칠순에 접어들었는데 용모는 단정하고 우아하였으며, 정신은 청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낭랑하고 만면에 자비를 띠고 사람들을 교화하므로 부처의 출세인 듯 여겼다.”

화엄학의 대가이자 뛰어난 문장력으로 추사 김정희 등 유학자들과 교분이 두터웠던 조선후기 고승 화악 지탁스님(華嶽 知濯, 1750~1839). 지탁스님의 법손인 혜소스님은 <삼봉집> 발문에서 범상치 않았던 스님과의 첫 만남을 이같이 회고했다.

장삼 가사만 걸쳐 ‘청빈함’ 표현

스님 코 음영처리…입체감 느껴


1750년(영조26)년 태어난 지탁스님의 법명은 지탁(知濯), 법호는 화악(華嶽), 속성은 한 씨다. 삼각산에서 오래 머물며 정진했다고 해서 스님의 법호를 삼봉(三峰)이라고도 한다. 스님은 황해도 견불사 강서사(江西寺)에서 출가 성붕스님의 제자가 된 후 금강산과 보개산에 오래 머물렀다.

<사진> 김천 직지사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지탁스님 진영.

<수능엄경>을 1만 번 읽고 도를 깨쳤다고 전해지는 스님은 출가 당시부터 영특해 꾸준한 정진으로 불교학에 통달했다. 특히 ‘화엄종주(華嚴宗主)’라고 일컬어 질 정도로 화엄학에 밝았다.

이와 함께 문장에도 뛰어나 당시 불교계는 물론 사대부 사이에서도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 가운데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와는 나이를 초월해 서로를 존중하며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김정희가 지은 문경 김룡사 대성암 ‘화악대사영찬(華嶽大師影讚)’ 현판이 이를 반증한다. 이후 수행과 후학양성에 매진하던 스님은 1839년(헌종5) 5월5일 금강산 장안사 지장암에서 세수 9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한없는 세월 동안 여러 선행을 두루 닦으니,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는 공으로 돌아가네. 자가의 본래 일을 이루지 못하니, 구십년 세월이 허황한 꿈이더라(窮劫歷修諸善行 萬法歸一一歸空 自家本事未成就 九十年充幻夢中)”는 임종게를 남겼다. 스님의 저서로는 문집 <삼봉집>이 전해진다.

지탁스님의 진영은 김천 직지사성보박물관, 문경 김룡사 대성암에 모셔져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직지사 진영은 일반 진영에서 보기 드물게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또 바닥에 둥근 방석을 깔고 앉았으며, 뒤는 주변장식물이나 배경 없이 황갈색으로만 처리한 것도 다른 진영에서 볼 수 없는 표현이다. 스님의 코는 짙은 황색선으로 형태를 잡고 부분적으로 음영을 주어 입체감을 잘 살렸다. 두 손은 무릎 앞에 있고 왼손에는 주장자가 들려 있다. 짙은 회색장삼을 입고 적색가사를 걸치고 있는 스님의 모습에서 검소했던 성품이 느껴진다.

이밖에도 진영 좌측에 법손인 혜소스님이 스님의 행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찬문도 눈여겨 볼만하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자료제공=<깨달음의 길을 간 얼굴들> (직지사성보박물관), <진영과 찬문>(도서출판 혜안)


[불교신문 2455호/ 8월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