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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눌암 식활-虎 외호 모습, 높은 도력 느껴져

 

눌암 식활-虎 외호 모습, 높은 도력 느껴져


“산택 간에 야윈 모습이나(山澤間谷), 능히 뭇 짐승들 조복시켜(能調禽馴獸) 마주하면 높은 도력에 기쁜 기운 감도네(相對道氣喜). 30년을 하루같이(三十年如一日).”  조선후기 순천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수행과 후학양성에 매진했던 고승 눌암 식활스님(訥庵 識活, 1752~1830). 순천 부사를 지낸 조선후기 문신 조진화는 스님의 높은 법력을 이 같이 찬탄했다. 


 동물 등장…스님 설법과 인연 추정

 입적 이전에 제작돼…독특한 사례

눌암스님은 1752년(영조28) 순천 율촌면 삼산리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법휘는 식활(識活), 법호가 눌암(訥庵), 속성은 전(全) 씨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스님은 17살(1768년)의 어린 나이에 순천 선암사로 출가했다.

스님의 범상치 않았던 일화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스님의 집안은 원래 양반가문 출신이었으나 가세가 기울어 생활은 늘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의 아버지가 마을의 양반집에서 부당하게 매를 맞고 돌아왔다. 이를 참지 못한 스님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즉시 몽둥이를 들고 양반집에 찾아가 주인을 마구 때렸다.

당시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사건이었다. 스님은 “대장부로 태어났는데 남에게 비굴하게 꼼짝을 못한다면 차라리 나비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닌다면 이것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탄식하고 결국 출가를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사진> 순천 선암사에 봉안돼 있는 눌암 식활스님 진영.

선암사에서 상월 새봉스님의 법손인 혜암 윤장스님의 법맥을 계승한 스님은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 정진에 몰두했다. 이후 금강산 마하연에 머물며 참선했으며, 묘향산 법왕봉 바위에서 3년 동안 좌선했다. 당시 호랑이 두 마리가 외호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스님의 진영에도 표현돼 있다.

이 같은 정진으로 스님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수많은 학인들과 신도들이 찾아와 법문을 청하고 스승으로 받들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평안감사로 있던 조선시대 문신 윤사국이다. 숭유억불 시대에 고위직에 있던 관료를 제자로 둔 자체만으로도 당시 스님의 명성을 가늠할 수 있다. 이후에도 불경을 늘 손에서 놓치 않았던 스님은 1830년 선암사 청련암에서 세수 62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스님의 진영은 선암사에 모셔져 있다. 이 진영은 다른 진영과 달리 동물이 등장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진영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스님이 앉아 있는 의자 양쪽에 있고, 비둘기 한 마리는 서안 모퉁이에 앉아 있다. 동물들은 스님이 수행이나 설법 등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부사 조진화가 쓴 찬문이 진영에 기록돼 있는데 이곳에서도 동물들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또 찬문기록에 따르면 진영은 스님이 입적하기 전인 1811년(순조11) 선암사에서 그려졌는데 이 역시 다른 진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사례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참고자료=<진영과 찬문>(도서출판 혜안)


[불교신문 2457호/ 9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