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교리와법문

[고승]경붕 익운스님- 화폭 감싸는 몽환적 신비함

 

경붕 익운스님- 화폭 감싸는 몽환적 신비함

 

조선후기 교종의 대가로 손꼽힌 대표적인 학승 경붕 익운(景鵬 益運)스님. 익운스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윤선구가 지은 스님의 비문을 통해 대략적인 행장을 알 수 있다. 스님의 법호는 익운(益運), 호는 경봉(景鵬)이다. 본관이 김해 김 씨인 스님은 전라남도 순천 주암면 접치리에서 태어났다.

1850년(철종 1) 15살 되던 해 부모님이 돌아가자 화엄학의 대가로 명망이 높았던 순천 선암사 함명 태선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했다. 이어 1854년 순창 구산사에서 화엄학에 밝았던 설두 유형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우며 학문을 닦았다.

입체적 기법의 사실적 묘사

가사 · 장삼 주름 살아날 듯

스님의 학문에 대한 쉼 없는 정진은 후학양성으로 이어졌다. 1868년(고종 5) 광주 원효사에서 후학을 지도했는데, 법석이 열릴 때 마다 수백 명이 넘는 학인들이 가르침을 받고자 전국에서 모여들었다고 한다. 결국 스님은 35살의 나이로 스승인 함명 태선스님의 교편을 이어받게 되고 ‘교가(敎家)의 늙은 호랑이’라고 불리며 일생을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스님의 제자로는 1917년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의 교정(敎正)을 역임하고 당시 사경승(寫經僧)으로 이름을 떨친 경운 원기스님과 20세기 초 선암사 중흥에 기여한 운악 돈각스님 등이 있다.

<사진> 순천 선암사에 모셔져 있는 경붕 익운스님.

스님의 진영은 순천 선암사에 모셔져 있다. 화기가 없어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조선왕조가 끝난 뒤에 그려진 함경 두운스님의 진영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1910~20년 사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이 진영은 이전에 그려진 고승진영과는 표현방식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제명과 찬문이 구획 안에 있지 않고 여백에 나란히 적혀 있다. 또한 화면 정면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도 이전에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기법이다. 반신상으로 하반신 아래와 오른손을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화면 중간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여백도 신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인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눈에 띈다. 옅은 음영을 주어 입체적이면서 눈썹, 수염, 머리카락까지 사실적으로 그린 것은 한국 전통방식이 아닌 서양화적 기법을 동원했다. 더불어 입고 있는 가사와 장삼의 옷 주름과 무늬 역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이 진영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진영의 찬문은 조선후기 문신 영재 이건창이 지었다. 그는 조선후기 유명한 문장가로 불교에도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찬문에서 “대붕은 남으로 가며/물 한번 치고 삼천리를 난다지 /찰간 우뚝 세워 /치열함을 이루었네 /비로자나불 모신 누각도 /손가락 튕긴 새 나타나 /남으로 백 곳 성을 지나도 /보현보살을 떠난 것은 아니리”라며 스님의 높은 공덕을 기렸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82호/ 12월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