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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설송 연초스님-18~19세기 화풍 한눈에 감상

 

설송 연초스님-18~19세기 화풍 한눈에 감상


“그 사람(연초스님) 됨됨이를 보자면, 얼굴 생김은 시원하고 마음은 순박하였다. 내전(內典)을 두루 보아서 그 근원을 찾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기에, 대사가 법단에 올라 설법을 하면 그 제자들은 모두 함께 공경하게 받들 따름이었다.”

청허 휴정스님 이후 갈라졌던 선교(禪敎) 두 파를 하나로 통합한 조선시대 고승 설송 연초스님(雪松 演初, 1676~1750). 조선후기 영의정을 지낸 문신 이천보(1698~1761)는 연초스님의 높은 공덕을 찬탄하며 이 같은 내용의 비문을 지었다.

지역내 화승의 이력ㆍ양식 파악

통도사 진영 경남문화재로 지정


연초스님은 1676년 경북 경산군(당시 자인현)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법호는 설송(雪松), 법명은 연초(演初), 속성은 백(白) 씨다.

<사진> 양산 통도사에 봉안돼 있는 연초스님 진영.

스님은 1688년(숙종 14) 13세의 나이로 석제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청도 운문사에서 출가한 후 환성 지안스님 아래서 수학했다. 당시 학문에 능했던 두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연초스님은 부단한 노력으로 선교에 통달해 많은 학승들이 따랐다고 한다. 특히 스님은 청허 휴정스님 이후 유정.응상.쌍언.석제스님 등의 교파(敎派)와 언기.의심.설제.지안스님 등 선파(禪派)로 갈라진 두 파를 하나로 통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1690년(숙종 16)에는 운문사를 네 번째로 중창했다. 이로 인해 운문사의 사세는 최고에 이르렀다고 한다. 스님은 또 유정스님, 휴정스님, 영규대사 등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표충사를 건립하고 유정스님의 영당비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만년에는 학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설을 그만두고 참선에 몰두했다. 그러다 1970년(영조 26) 5월1일 법랍 62세, 세수 75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제자들은 스님의 사리를 양산 통도사와 운문사에 모셨다. 스님이 입적한 지 4년이 지난 뒤 문신 이천보가 비문을 짓고 이정보가 글을 쓴 비문이 운문사에 세워졌다.

연초스님의 진영은 통도사와 표충사에 모셔져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두 진영 모두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역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특징이다. 연초스님을 비롯한 고승 62명을 그린 통도사 진영은 지난 2006년 11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450호로 지정됐다. 이는 18세기에서 19세기 말에 조성된 작품들로서 당시의 화풍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들의 이력과 양식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어 조선후기 고승진영에 관한 시대, 지역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표충사에 봉안돼 있는 연초스님의 진영도 보존상태가 좋고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다른 고승의 진영 25폭, 탱화 1폭 등과 함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8호로 일괄 지정됐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46호/ 7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