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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호암 체정스님-학승의 풍모, 화폭 속 선연

 

호암 체정스님-학승의 풍모, 화폭 속 선연

환성 지안스님의 법맥을 이은 해남 대흥사 13대 강사로 조선시대 후기 대표적인 학승으로 손꼽히는 호암 체정스님(虎巖 體淨, 1687~1784). 체정스님은 1687년 전라북도 고창 흥양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법호는 호암(虎巖), 법명은 체정(體淨), 속성은 김 씨다. 1701년(숙종 27) 15살의 나이에 출가한 스님은 청허 휴정스님의 제자인 당대 고승 환성 지안스님의 법을 이어받았다.

방석대신 법상 앉은 모습 이채

윤곽 최소화한 심성 표현 독특


스님은 주로 합천 해인사와 양산 통도사에 주로 주석했는데, 당시 강설을 듣고 따르는 학인들이 수 백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중들의 호응이 높았지만, 스님의 정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 그러다 대흥사 13대 강사로 자리를 옮긴 스님은 이곳에서도 명성을 이어갔다.

<사진> 순천 선암사에 봉안돼 있는 체정스님의 진영.

특히 대흥사 정진당에서 대규모로 열린 <화엄경> 법석은 강사로서의 스님의 능력을 최고의 경지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스님은 1748년(영조 24) 3월 강원도 장구산에서 53불을 조성하는 법회에서는 증명법사로 초청되는 등 당시 교단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법회에 참석은 스님의 속세 마지막 법문이 됐다. 장구산으로 떠나기 앞서 스님은 제자 연담 유일스님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네가 내 법맥을 잇도록 하여라. 부디 부지런히 배우고 일 처리에 신중하여 법통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된다. 내가 이번에 가는 것은 다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니, 이제 네게 법맥을 전한다.”

이어 스님은 장구산에 들어가 53불을 조성한 뒤 곧바로 금강산 표훈사 내 원통암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은 1748년 열반에 들었다. 세수 62세, 법랍 47세. 스님의 입적에 앞서 제자들에게 “쓸데없이 빈말을 너무 많이 지껄이고(請法多差失), 서쪽을 물으면 동쪽으로 대답했네(問西還答東). 오늘 아침 크게 웃고 더나가나니(今朝大笑去), 풍악산은 뭇 향기 속에 은은하네(風岳衆香中)”라는 게송을 남겼다.

이처럼 일생을 후학양성과 수행에 전념한 체정스님의 진영은 순천 선암사에 봉안돼 있다. 특히 이 진영은 돗자리 또는 방석위에 앉아 있는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법상(法床)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큰 특징이다. 또 황색으로 바닥과 벽면의 구분없이 화면 바탕을 채색한 배경화면도 두드러진다. 안면의 묘사는 윤곽만을 최소한의 선으로 개성을 살려 심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진영에는 제자 연담 유일스님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찬문도 눈여겨 볼만하다.

찬문에는 “이 한 폭의 진영이 호암 스님이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선사의 본래 모습은 아니구나. 선사가 어떤 분인지 알고 싶다고? 몸은 광명의 깃발 마음은 신명이 통하는 곳간이셨네. 눈은 사해를 굽어보고 눈썹은 3천 길을 뻗어갔네. 하늘 닿은 그물 손에 쥐고 백만 용상을 낚으시나…(중략)”이라고 기록돼 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48호/ 8월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