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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범일국사 - 눈매ㆍ수염등 사실적 묘사 “놀라워”

 

범일국사 - 눈매ㆍ수염등 사실적 묘사 “놀라워”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사굴산문(私掘山門)을 개창해 남종선의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신라시대 고승 범일스님(梵日, 810~889). 범일국사로도 잘 알려져 있는 스님은 침체된 신라불교를 쇄신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한 선지식이다.

범일스님은 810년(신라 현덕왕 2)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 시호는 통효(通曉), 탑호는 연휘(延徽)인 스님은 15세 때 출가해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이어 831년(흥덕왕 6) 당나라로 가 마조대사(馬祖大師)의 제자 제안스님의 문하에서 6년 동안 수학했다. 또 약산에 있는 유업선사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은 후 847년(문성왕 9)에 귀국하였다. 이후 스님은 847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파를 개창하고 동해안 일대에 사찰을 건립하는 등 선풍을 드높였다.

 

좌안칠분면의 전신교의좌상

화기 표기 문화재 가치 높아



<사진설명> 평창 월정사성보박물관에 봉안돼 있는 범일국사 진영.

명주 도독인 김공의 청으로 40여년을 굴산사에 지낸 스님은 당시에도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이 국사로 모시려고 했지만 “선풍이 일고 있는 이 지역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평소의 마음이 곧 도(道)”을 항상 강조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던 스님은 889년 세수 80세, 법랍 60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이후 백성들은 스님의 높은 공덕을 기리기 위해 대관령 정상에 서낭사(城隍詞)를 짖고 매년 음력 4월15일에 성황제를 올리고 있는데, 이는 지역 전통문화행사로 계승돼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범일스님의 진영은 스님이 창건한 삼척 영은사 칠성각에 봉안돼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는 평창 월정사성보박물관으로 옮겨와 모시고 있는 이 진영은 조선시대인 1788년(정조 12) 신겸 등에 의해 조성됐다. 불화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1년 12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된 이 진영은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으로 비스듬히 앉은 좌안칠분면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 바닥에는 자리를 원근감 없이 평면적으로 그렸고 화면 가득히 인물을 채운 구도, 청회색의 법복과 붉은 가사, 바닥의 화문석 묘사 등은 조선 후기 진영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발에는 족좌대가 있고 오른쪽 손목에는 염주를 길게 늘어뜨렸으며 양손으로 주장자를 비스듬히 들고 있다. 특히 한쪽을 응시하는 예리한 눈매, 꾹 다문 작은 입, 눈썹과 수염 표현 등 매우 사실적인 안면묘사가 돋보인다. 예리하면서도 깊이 있는 대선사로서의 기백이 잘 표현돼 있다.

건장한 상체에 비해 하체는 빈약하게 표현되어 있어 신체의 비례는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왼쪽 팔과 아랫부분이 탈락되었고 배경 부분이 얼룩진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현존하는 진영이 거의 없고 그림 하단 중앙에 정확한 화기를 남기고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21호/ 4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