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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벽송 지엄스님 - 스님 공덕 읊은 찬문 ‘눈길’

 

벽송 지엄스님 - 스님 공덕 읊은 찬문 ‘눈길’


조선불교의 정통법맥을 이은 조선 전기 대표적인 고승 벽송 지엄스님(碧松 智儼, 1464∼1534). 1464년(조선 세조10) 전북 부안 송 씨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의 호는 ‘야노((野老)’, 당호는 ‘벽송당’, 법명은 ‘지엄’이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 칼쓰기를 좋아하고 병법을 즐겨 읽었던 스님은 무과에 합격해 1491년 여진족이 침입하자 장수로 출전해 공을 세우기도 했다.

 

편안한 자세 전신상 ‘독특’

휴정스님 율시 주목할 만



그러나 스님은 당시 전쟁의 참상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크게 괴로워했고 28살의 나이로 출가를 결심하게 됐다. 계룡산 조계대사를 찾아가 출가한 스님은 벽계 정심스님 등에게 수학한 뒤 1508년(중종3) 금강산 묘길상암에서 수행을 하던 중 <대혜어록>을 통해 평소 느끼던 의심을 풀고, 이어 <고봉어록>을 보다 깨달음을 얻었다.

득도한 뒤 지엄스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금강산과 능가산을 두루 참방한 뒤 1520년 함양 지리산에 들어가 작은 사찰에 머물며 하루 한 끼만의 먹고 수행에 전념하면서 다른 수행자들의 사표가 되었다고 한다. 스님이 수행하던 지리산의 작은 사찰이 바로 현재의 벽송사다. 1534년 11월1일 제자들을 수국암으로 모은 스님은 그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법화경>을 강의했다. 이것이 마지막 가르침이었고 스님은 이날 입적에 들었다.

<사진> 함양 벽송사에 봉안돼 있는 지엄스님 진영.

스님의 진영은 벽송사에 봉안돼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진영은 구도나 필선도 좋고 찬문도 남아있어 가치가 높다. 특히 현재 전하고 있는 스님의 진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97년 1월 경상남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가로 85㎝, 세로 134㎝의 크기로 비단바탕에 채색된 이 진영은 약간 오른쪽을 바라보고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이다. 승복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왼손에는 끝에 술을 늘어뜨린 불자를 쥐고 있으며 오른손은 편안하게 의자의 팔걸이에 얹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런 자세는 다른 진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형태다. 얼굴은 다소 긴 편이고 길게 처진 눈썹 아래 적당한 두 눈이 약간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입은 작은 편인데 꽉 다물지 않았어도 약간은 힘을 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진영 윗부분에 기록돼 있는 찬문도 주목할 만하다. 서산대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청허 휴정스님이 지은 이 찬문은 4언 율시로 되어 있다. 지엄스님의 제자인 부용 영관스님의 제자인 휴정스님은 찬문에서 “어두운 세상 홀로 밝히는 등불이요(昏衢一燭), 진리의 바다를 건너는 외로운 작은 배(法海孤舟). 아! 스님의 덕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아(鳴呼不泯), 천추만세토록 이어지리(萬世千秋)”라며 지엄스님의 높은 공덕을 기렸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19호/ 4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