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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일연스님 - 역사서 ‘最高’ 진영은 ‘最近’

 

일연스님 - 역사서 ‘最高’ 진영은 ‘最近’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 고대 역사서로 평가받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고려시대 고승 보각국사 일연스님(普覺國師 一然, 1206∼1289).

일연스님이 고려 충렬왕 재위당시 군위 인각사에서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삼국유사>는 많은 고대 사료를 수록하고 있어 문헌적 가치가 높다. 특히 단군을 국조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단군신화와 향찰로 표기된 신라 향가 등은 고대사, 고문학사 분야에서 귀중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육당 최남선 선생이 이 책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진> 군위 인각사에 봉안돼 있는 일연스님 진영.

스님 모습 전해져온 작품 없어

2001년 인각사서 새롭게 봉안

1206년(고려 희종 2)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난 일연스님의 속성은 김 씨, 이름은 견명(見明)이다. 스님은 9살의 나이에 무량사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고, 12세에 출가해 설악산 진전사에서 대웅스님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1227년 22살의 나이에 승과 최고 시험인 선불장(選佛場)에서 장원급제에 해당하는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했으며, 이후 비슬산 보당암으로 옮겨 수행에 전념했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남쪽의 포산, 남해, 윤산 등지에서 수행에 전념한 스님은 1261년 강화도 선월사에 주석하면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법을 이었다. 청도 운문사에서 선풍을 진작했던 스님은 왕명으로 개경 광명사에 주석했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돼 ‘원경충조(圓經沖照)’란 호를 받았다. 스님은 이듬해 군위 인각사를 중건하고 <삼국유사> 5권을 저술한 이후 1289년 7월8일 인각사에서 세수 84세, 법랍 70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삼국유사>라는 역작을 남기고 한국불교의 선풍을 진작한 일연스님의 진영은 안타깝게도 온전히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다. 현재 일연스님의 진영을 모신 사찰은 스님이 창건한 군위 인각사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인각사 국사전에 봉안돼 있는 일연스님의 진영은 현 주지 상인스님이 문명대 전 동국대 교수에게 자문과 조성을 의뢰해 지난 2001년 완성한 것으로 최근에 제작된 것이다. 이에 앞서 문화관광부가 1992년 7월 일연스님을 이달의 문화인물을 지정하기 위해 불교계 안팎에서 진영을 찾다 없어서 당시 전문가에게 의뢰해 표준 진영을 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상인스님이 인각사에 오기 전까지 경내에 있던 스님의 유일한 진영이었다.

상인스님은 “2001년 이전까지 인각사에 모셔져 있던 문광부의 표준 진영은 가사 등 의제가 맞지 않아 시대에 맞는 제대로 된 진영을 새롭게 봉안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스님의 진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17호/ 4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