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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일제강점기 선지식 발자취 잇따라 발견

 

일제강점기 선지식 발자취 잇따라 발견


만공(滿空, 1871~1946)스님과 석전(石顚, 1870~1948)스님 등 근대 선지식의 수행 흔적이 담긴 유품이 잇따라 공개됐다. 최근 본지를 통해 공개된 유품은 일제강점기 조선불교를 수호하며 수행 정진했던 선지식들의 향기가 묻어 있는 석전스님 편지와 만공스님 죽비이다. 또한 110년 된 천장암 현왕탱과 1912년 만공스님이 증명한 불화도 함께 공개됐다.



석전스님이 서응스님에게 보낸 서신


설파스님 비 제작 동참 요청

편지 곳곳 우정 어린 글 가득



○…1924년 석전 박한영 스님이 서응(瑞應)스님에게 보낸 편지가 처음 공개됐다. 서응스님 손상좌인 수진스님(부산 해인정사 주지.전 해인승가대 강주)이 보관해온 이 편지는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석전스님의 편지는 물이 흐르는 듯한 달필로 쓰여 있으며, 조선후기 대강백인 설파(雪坡)스님의 비 제작에 서응스님이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편지에 따르면 학산(鶴山)스님과 월초(月初)스님이 ‘백금(百金)’의 보시금을 쾌척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석전스님이 서응스님에게 ‘오형(吾兄)’이라고 표현하는 등 매우 가까운 사이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형은 ‘나의 형’이란 뜻으로 정다운 벗 사이의 편지에서 상대를 이르는 말이다. 편지에 나오는 월초(1858~1934)스님은 남한총섭과 북한총섭을 지낸 스님이었다. 이후 월초스님은 신학문 연구와 교육을 위해 불교연구회를 창설했으며, 서울 창신동 원흥사에 명진학교(지금의 동국대)를 세워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봉선사지〉가 있다.

해인정사 주지 수진스님은 “서응스님 문집을 정리하다 우연히 편지를 발견했다”면서 “어른스님들의 향기가 묻어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설파스님 비는 본래 1796년(정조20년) 채제공이 비문을 지어 선운사에 세웠다. 하지만 석질이 오래되고 판독이 어려워 1923년(계해년) 봄 구산문도회(龜山門徒會)에서 비를 다시 세우기를 결의하고, 1924년(갑자년) 석전스님이 비문을 지어 세웠다. (건립은 1925년)

비문에는 194명의 스님 명단이 수록돼 있다. 비문에는 월초거연(月初巨淵)스님과 용하(龍下)스님, 만암(曼庵)스님, 석하(石霞)스님, 장조(長照)스님 등의 법명이 보인다. 동참사찰도 영원사, 선운사, 구암사 등 16개 사찰 명단도 들어있다.

설파상언(雪坡尙彦, 1707~1791) 스님은 조선 후기 승려로 화엄학에 밝았다. 효령대군 11세손으로 환성지안(喚醒志安 1664~1729)의 손상좌에 해당한다.

동국대 국문과 김상일 교수는 “석전 박한영스님을 비롯해 당시 스님들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부산=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석전 박한영 스님이 서응스님에게 보낸 편지 (전문)

向者에

智異 歷路에 悤悤을 因하여 吾兄에게 躬晉치 못하고 一書를 致達하였더.

入照 與否는 尙히 然 하암니다. 更問 歲暮에 法候 健旺하시옵니까. 弟는 龜岩寺로부터 數日前에 來此無頃하옵니다. 更達키는 未安하옵니다만은 雪坡翁師 碑件에 對하여 吾兄이 義金을 多數히 하옵시야 後生의 模楷가 되나이다. 鶴山스님 月初和尙과 갓이 百金씩이나 하시기 어려우나 其次에 優數量을 希望하옵니다. 從速히 回身하시옵소서. 不備上

甲子 十二月 二十日 朴漢永 頓拜

도움말=동국대 김상일 교수



천장암 시절 만공스님 유품도 나와


일반나무로 만든 ‘죽비’눈길

불화 화기에 스님 법명 기록


○…서산 천장암(주지 선본스님)은 만공스님이 주석하던 시절 제작된 죽비와 만공스님 법명이 적힌 불화(佛畵)를 소장하고 있는 사실을 공개했다. 천장암이 공개한 만공스님 죽비는 길이 30cm 정도로 겉면에 옻칠을 해 놓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죽비는 지금 사용하는 죽비와 다른 형태로, 대나무가 아닌 야산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나무로 만들었다.

천장암 주지 선본스님은 “근세 한국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스님이 주석한 이후 수월.혜월.만공스님 등 역대 선지식이 머물며 공부하던 곳이 천장암”이라면서 “큰스님들의 수행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죽비는 정진하는 납자들에게 많은 경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만공스님이 사용하던 죽비.

한편 천장암에 모셔진 불화(佛畵)의 화기에 만공스님 법명이 기록된 사실도 확인됐다. 1912년(임자년) 초파일 직후 봉안된 불화에는 만공스님이 증명비구(證明比丘)로 되어 있으며, 당시 금어(金魚)와 별좌(別座) 소임 등을 본 스님들의 법명도 기록되어 있어 근세불교 연구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 불화는 조선 왕실의 재정 관리를 맡아보던 내수사(內需司)의 이○규(李○珪) 영가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기 위해 봉안된 것으로 부인 장일광화(張日光華)가 대시주(大施主)로 되어 있다. 시주자의 주소는 ‘京城內 西部 仁達坊 內需司 居住’로 적혀있는데, 인달방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사직동 근방이다.

또한 천장암에 모셔진 현왕탱(現王幀)이 1898년(광무2년, 무술년)에 봉안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왕탱에는 당시 천장암에 주석하던 스님들의 법명이 기록돼 있어 천장암의 사사(寺史)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자매로 보이는 두 명의 김씨(1832년생, 1850년생)가 대시주로 적혀 있는 현왕탱에는 증명비구에 성원(性圓)스님, 송주지전(誦呪持殿)에 도한(道漢)스님, 금어비구(金魚比丘)에 약효.문성(文成)스님, 별좌종두(別座鐘頭) 설조(說早)스님 법명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이 가운데 약효스님은 마곡사의 화승(畵僧)으로 마곡사의 화승으로 공주 갑사, 서울 호국지장사, 수원 봉녕사 등의 현왕탱을 그린 약효(若效)스님과 같은 인물로 추정된다. 현왕탱은 19세기 이후 유행했던 그림으로 망자를 재판을 하는 현왕과 권속들이 묘사되어 있다.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장 정암스님은 “현왕탱은 조선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며 “작품성을 논하기에 앞서, 조선후기 어렵고 궁핍한 시절에 출가사문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수행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충남 서산시 고북면 연암산에 있는 천장암(天藏庵)은 서기 636년 담화(曇和)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제7교구 수덕사 말사고 인법당과 산신각, 염궁선원이 있는 작은 절이다. 조선말 경허스님을 비롯해 태허(泰虛).만공(滿空).혜월(慧月).수월(水月).원담(圓潭) 스님 등 근현대 고승의 정진도량이다.

서산=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이시영 충남지사장 lsy@ibulgyo.com


[불교신문 2434호/ 6월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