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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생명의 외침 있기에 오늘도 산하를 걷지요

 

“생명의 외침 있기에 오늘도 산하를 걷지요”

도보 순례단과 동행하다

 

 


  ▲ 종교인 생명평화 도보순례단은 지난 4월29일 충남 공주시와 연기군 일대를 순례했다.

 

불기2552 부처님오신날 특집Ⅵ / 한반도 대운하를 살피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을 지나 지난 4월22일부터 금강일대를 걷고 있는 ‘생명의 강을 지키는 사람들’ 종교인 생명평화 도보순례단을 지난 4월29일 충남 공주에서 만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검게 그을린 얼굴과 남루한 옷차림. 길 위의 여정이 녹록하지 않음을 한 눈에 보여줬다. 지난 2월12일 김포 애기봉을 출발해 어느덧 78일 째 강을 따라 걸으면서 이들이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순례길에 동참했다.

# “이들은 왜 걸을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고생을 사서하냐는 질문에 순례단 단장 이필완 목사는 “직접 와서 한번 걸어보라”고 말했다. 걷다 보면 알게 된다고. 지난 78일간 강을 따라 걸으면서 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곳곳에 숨겨진 명소를 찾아냈다는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대운하로 사라질 생각을 하면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사진> 순례길에 이웃에게 물을 얻어 마시고 있는 순례단.

뿐만 아니다. 영산강에서는 그간의 개발로 이미 썩어버린 강물을 보았고, 갯벌이 사라져 사막처럼 변해버린 새만금을 걸어야 했다. 이날의 순례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금강은 충청지역을 호(弧)모양으로 흘러 호강이라고도 불린다. 무주, 익산, 대전, 부여를 휘돌아 흐르는 이 강은 예전엔 뱃길이었다. 밀물 때면 배들이 서천, 강경, 익산 등을 오가며 새우젓을 실어 날랐다.

이런 자연물길이 막힌 것은 서천 하구둑이 건설된 후부터다. 수심은 점점 낮아져 어른 무릎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는 곳도 생겼다. 배가 다닐 수 없게 되고, 장어와 참게, 황복, 뱅어 같은 물고기도 사라졌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이 강만은 아니었다. 금강에 인접해 있는 산들은 잘려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강과 산을 보면서, 그들은 강과 산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고 한다.

# “걸으면 알게 된다?”

40여명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 걷기 시작했다. 이날 일정은 석장리 박물관에서 출발해 청벽대교, 불티교, 충남산림박물관까지 가서 오전일정을 마치고, 이어 불티교 하단의 강변 비포장도로를 따라 원봉리와 성덕기를 거쳐 연기군 금남대교까지 도착하는 것. 그런데 이들의 걸음은 빠르지 않다. 기록을 단축하듯 빨리 순례를 마치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걸으면서 금강과 그 주변을 보고 느낄 뿐이다.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이들의 걸음속도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사위가 눈에 들어온다. 잡초만 무성한 줄 알았던 길가가 봄꽃으로 가득하다. 너무 작아서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하늘색 꽃마리가 지천이고, 강가에는 자줏빛의 자운영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책 속에서만 보던 명아주, 애기똥풀, 주름잎도 흔하게 보였다. 강을 따라 난 샛길에는 야생동물의 발자국도 남아있다. 너구리나 고라니, 산토끼들이 물을 먹으러 다니는 흔적이다.

대운하가 건설돼 거대한 콘크리트 제방이 쌓이면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된다. 들꽃의 자연스런 모습도, 야생동물이 물을 먹을 곳도 없어질 것이다. 김포환경연대 대표 지관스님은 “걷기를 통해 자연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강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며 “강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동체대비를 마음과 함께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 “그래도 행복하다?”

아침나절에는 숨어있던 태양이 기어코 모습을 드러냈다. 한낮의 태양을 이고 걷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점심까지 든든하게 먹은 터라 졸음까지 몰려오는 시각, 순례단의 고개는 점점 땅을 향했다. 그 순간 “10분간 쉬었다 가겠다”고 외치는 이원규 총괄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구원투수 같은 목소리에 힘입은 사람들이 그늘로 모여들었다.

순례단 사이에서 ‘포대화상’이라 불리는 원불교 김현길 교무가 가방에서 오렌지를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꿀맛 같은 과일 한 조각에 순례단에는 활기가 돈다. 어느 틈에 문정현.규현 신부의 노래가 이어졌다. 짧은 휴식시간 동안, 힘든 여정 속에 서로가 서로의 피로회복제가 돼 주는 모습을 보며, 순례단을 이끄는 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순례길은 당연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는 길이다. 화장실의 편리함, 목욕의 시원함, 집이 주는 편안함이 사라진 길 위에서 이들은 작은 것이 주는 행복함을 금방 알아차리고 고마워했다. 타는 목을 적셔줄 시원한 물 한 잔, 이웃이 건네는 격려의 말 한마디가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 “순례는 계속된다?”

이날 순례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순례단보다 한발 앞서 순례길 답사를 마친 금강운하저지국민행동 회원들은 길안내를 맡았고, 대전충청지역 개신교 목사 20여명도 동참했다. 서울에서 휴가를 내고 온 젊은이들도 있었다. 40여명으로 시작한 순례길 중간중간 일일 참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비단 이날뿐만이 아니다. 이틀 전에는 정토회 회원 1500여명이 모여 순례단과 함께 했고, 그보다 하루 앞서서는 동학사 스님 100여명도 금강을 순례했다.

이처럼 날마다 찾아오는 순례객들이 있어 이들은 외롭지 않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똑같은 얘기를 해야 하지만 불편하지도 않다. 생명의 강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강지키기 기독교행동 공동대표 김경호 목사는 말했다. “순례단의 발걸음에는 살려달라는 물고기들의 아우성이,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생물들의 외침이 묻어있다. 20여명이 시작한 이 걸음은 곧 4000만의 발걸음이 되고 미래 세대를 깨우는 발걸음이 되고, 각 종교의 종교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발걸음이 돼 100일 순례가 끝나면 다른 세상이 시작될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100일의 순례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순례단이 바라던 대운하 백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직도 정부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은 “때가 되면 설명하고 추진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고, 청와대는 대운하가 아니더라도 강과 관련한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에서는 지지도가 높은 지역부터 대운하 건설을 하겠다고 한다.

도법스님의 말처럼 ‘내 안의 대운하’ ‘내 안의 개발논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 논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들이 순례를 마치면 다른 세상이 올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일 또 해가 떠오르면 이들은 또 걷는다는 것이다.

공주=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기고 / 고세정 (APEC산업연구원 소장) 




        “21세기에 19세기형 사업이 웬 말”



요즈음 대운하건설을 경부고속도로와 비교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이는 20세기의 시대적 상황과 21세기의 세계경제질서를 인식치 못한 처사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중화학공업의 인프라였다. 또한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단순 노동력이 흡수되면서 실업률 감소를 가져왔고 특히 이들의 기술습득은 중동 등 해외인력진출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풍부한 노동력의 희생과 정경유착에 따른 재벌기업을 야기했다.

정부는 ‘민자’ 기업은 ‘투기’…동상이몽

1980년대 한국에서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노동운동으로 6.29민주화를 이뤘다. 그러나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민주화가 민주정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결국 외환위기로 대량실업이 발생했다. 즉 정경유착에 의한 기업.금융구조조정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외환위기로 임금노동자는 무차별적으로 구조조정을 당했지만, 기업들은 또다시 국민의 세금으로 회생(回生)됐다.

최근에는 제3차 산업이 주목된다. 좁은 의미로 제3차 산업은 상업, 금융, 보험, 수송 등에 한정하고 제4차 산업은 정보, 의료, 교육서비스 산업 등 지식집약형 산업을 묶고 제5차 산업은 취미, 오락, 패션산업을 묶는다. 그러므로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한반도 대운하사업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1970년대의 경제위기 여파로 기업과 금융시장이 재구조화를 단행한 결과 지구적 경제는 새로운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확대됐다. 이러한 국제질서에서 대운하건설은 시장주의와 상반(相反)되는 동시에 19세기형 물류수단으로 21세기 정보화시대의 글로벌지식경제를 지향해야할 한국의 선진화에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인프라가 될 수 없고, 고용창출로 고급인력의 실업자구제를 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민자유치’라는 편법으로 정부 돈, 즉 “국민이 내는 세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전부 민간 기업이 조달한 자금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으니 국민은 염려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들의 대운하건설 참여는 수익성에 의한 참여가 아니라 운하를 건설하고 주변지역의 개발권을 따내서 투기로 이익을 보자는 것으로 이들의 불꽃놀이에 지역주민들은 설 곳이 없어진다.

지구적 경제는 시장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장을 대신하여-또는 시장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시장과 정부 그리고 시장을 대신하여 활동하는 국제금융기관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창조되었다.

이들의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지구 곳곳의 금융센터와 연계되어 기업들이 온라인으로 국가와 세계를 가로질러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이 충분히 성장한 경제의 지구화로 자본력이 풍부한 외국투자가와 헤지펀드로 인하여 각국의 기관투자에 의한 공개시장 조작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익성 없는 사업…경제파탄의 ‘전주곡’

따라서 글로벌시장경제질서에서 민간유치와 외자유치는 곧 이들에 의한 주식시장의 교란을 불러올 수 있다. 수익성이 없는 대운하건설로 외자유치에 대한 이자가 국민세금으로 지급될 경우, 이는 국부유출을 가져오면서 한국경제의 파탄(破綻)을 불러올 수 있다. 21세기 글로벌시장경제질서에서 대운하건설이 과연 경제적가치가 있는지 운하건설을 추진하고자하는 지도자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불교신문 2425호/ 5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