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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학림사 오등시민선원 ‘하루21시간 정진’ 현장

 

학림사 오등시민선원 ‘하루21시간 정진’ 현장

참선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수행을 위해서라면, 수행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엄밀히 말해 수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무엇인가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영원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당면한 문제다. 각자가 처한 환경과 능력과 자신이 만들어 온 인연에 따라 그 문제에 대한 의문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인생의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수행’이라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물론 삶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그것이 화두로 이어진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수행과정을 거쳐 만들어 가야 한다. 여기에 화두로 승화되기까지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 계기는 자신의 발심의 정도와 선지식의 인연, 도반의 인연, 각자의 필수적인 인연들이다. 이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이 발심과 선지식, 도반의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인연이 조화를 이루어 하루 21시간 용맹정진 하는 현장이 있다. 충남 공주의 학림사 오등선원(조실 대원스님)이다.


 

“일대사 해결 못했는데 해제가 어디 있나”


  지난해 이어 4월26일부터 8박9일 동안 수행

  조실스님 “참선한 이는 실천도 잘 해야” 강조


학림사(주지 경담스님)의 21시간 용맹정진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지난해에는 7박8일이었지만 이번에는 8박9일 일정이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수행이다. 하지만 지난 4월26일 시작된 이번 정진에는 무려 60여명이 방부를 들였다.

사찰측도 놀랐다. 산철결제를 마친지 일주일이 채 안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스님 20명 재가불자 40명. 퇴근 후 철야정진 동참자까지 합치면 60명을 웃돈다.

<사진설명> 8박9일의 용맹정진기간중 만 3일이 경과한 후 만난 수행자들의 눈빛은 맑아 보였다.

새벽3시 예불, 3시10분 입선, 오전6시 아침공양, 오전7시 입선, 10시50분 방선 및 사시마지, 11시 사시공양, 12시 입선, 오후4시50분 방선 및 청소, 오후5시 저녁공양, 오후6시 저녁예불, 오후6시10분 입선, 새벽3시 예불. 쉴 수 있는 시간은 세 차례의 공양시간을 포함해 3시간이 전부다. 하지만 이 세 시간동안 잠을 청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공양하고 양치하고 남는 시간엔 포행하는 이들이 많다.

왜 이런 고행을 사서하는 것일까?

“산철결제에서 하안거 결제사이의 남는 시간에 용맹정진을 했으면 좋겠다”는 선방 스님들의 바람에서 시작됐다. 일상업무가 산더미 같은데다 부처님오신날을 목전에 둔 사찰 소임자들은 차 한 잔 나눌 시간조차 없다. 정진대중을 외호할 대중이 10명에 불과하다보니 공양시간을 놓치기 일쑤다.

조실 대원스님도 “솔직히 힘들지만 뿌듯하다”고 한다. 365일중에 쉬는 날도 있어야 하는데 ‘오등선원에서 정진하면 할수록 힘이 난다’며 몰려와 공부하는 이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스님들의 선방 오등선원은 수리중이기 때문에 스님들의 동참은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스님들이 오등시민선원에서 재가불자들과 함께 정진하게 되어 미안감이 없지 않았는데 재가불자들에게 무언의 스승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고마움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스님들은 재가자들이 있기 때문에 정신을 더 바짝 차리게 되고, 재가자들은 스님들에게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자세로 임하기 때문에 정진현장 분위기는 그 어디에 비할 데 없을 정도로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조실 스님의 손에는 항상 장군죽비가 들려 있다.

“참선과 행이 따로 가는 공부가 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려고 하는 공부도 안된다. “공부함으로써 밖으로 드러나는 행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느끼게 돼야 한다. 일반인들이 볼 때 ‘참선공부한 사람은 역시 다르다. 참선한 사람들이 역시 실천행도 좋다’고 느끼게 돼야 생산적인 참선공부”라는 것. 그래서 스님은 더욱 더 강조한다.

“간화선하는 동안은 속으로 다른 생각, 다른 수행방편을 생각해서는 절대 안된다. 화두로 자신의 인생문제를 해결하고, 진면목을 찾는 공부를 하라. 하루 24시간 화두를 놓아서는 안된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한결같이 화두를 참구하는 속에 정진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용맹정진에 직접 동참하지 않으면 취재를 사양한다는 것이 사중의 입장이다. 조실과 입승 스님을 통한 취재협조 ‘압력’도 스님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스님들은 사진촬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끝에 간신히 4명의 재가불자가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구인순(71, 부산 사직동, 법명 만공화), 박경자(66, 부산 안남동, 법명 만법심) 박상우(65, 부산 화명동, 법명 법성), 김준배(62, 서울 삼성동, 법명 만금)씨.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시민선원 사무실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조금 전 들어왔을 때보다 사무실이 밝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는 마치 한 사람이 얘기하는 것같이 공통점이 많았다.

“나 스스로 놀라고 있다.”

구인순씨는 21시간 용맹정진이 처음. 다른 이들은 18시간 정진 경험이 있다. 이들 모두 3일째 잠을 자지 않고 정진했지만 전 날 잠을 한 두 시간 덜 자고 현장에 온 기자들보다 안색이 훨씬 밝고 편안해 보였다.

“18시간 정진할 때는 3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예 잠을 자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덜 피로한 것 같다”고 한다. “분명히 변화가 있지만 석 달 안거동안 하루 18시간 씩 용맹정진을 하는 스님들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부분일 수도 있다. 간화선의 특성상 변화의 정도를 표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정진을 마치는 날 조실스님이 대중들을 일일이 점검한다. ‘8박9일 밥값을 했는지’ 묻고 점검해 가운데 경책을 아끼지 않는다. ‘할’이 나오고 ‘방’이 춤을 출수도 있는 순간이다. 재가불자들이 선방 조실 스님에게 직접 공부를 점검 받는 일은 이곳이 아니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무심코 길을 가다가 “동네가 다 훤해졌다”는 얘기를 들은 경우도 있다. 구인순 씨는 인사치레임을 알지만 이 같은 얘기를 종종 들었다. 심지어는 법복차림으로 상점에 들렀다가 “얼굴이 밝고 보기 좋다”며 주인이 구입하려던 물건을 보시해 고민한 적도 있다.

김준배씨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서류 작성할 때 직업란에 ‘수행자’라고 쓴다.” 손자손녀를 맡아주기를 바라는 자녀들에게는 ‘아이 봐주는 할머니’보다는 ‘도인 할머니’를 두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수행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

매년 한 차례 수련회에 참여하다 퇴직 후 본격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박상우씨에게도 많은 변화가 왔다. ‘수행’ 얘기를 자주 하다 보니 가족분위기도 달라졌다. 대인관계에서도 많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먼저 남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무섭다며 자신에게 말조차 걸지 않던 주변사람들이 이제는 거리낌 없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남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준다. 그리 급했던 성격도 이제는 자신을 의심할 정도로 여유로워 졌다. 실례를 듣고 싶다 했더니 “직접 수행을 해보라”고 권한다.

“여기 오면 사람들이 다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이 다 스승입니다. 좋지 않은 일을 보게 되면 저것은 안 하겠다 마음먹고, 좋은 일은 보면 따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한 철 지낼 때마다 바뀌어 갑니다.” 마음이 바뀌니 마음도 바뀌고, 마음이 편해지니 몸에 아픈 곳도 낫게 돼 건강해진다는 것.

이들은 “시민선원에 정진대중이 따로 있는 것도 자랑스럽지만 21시간 용맹정진하는 대중이 더 많아 불교가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불교에 입문했다면 이 공부를 염두에 두고 짬 날 때 마다 이곳으로 오라”(박상우씨)고 한다. 오등선원에서는 조실 스님이 ‘앉는 자세’부터 일대일로 지도할 정도로 자상하기 때문이다. “조실 스님은 정진대중들의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을 정도여서 어디서 나누는 대화라도 부담이 없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소참법문으로 들린다”(김준배씨). “이곳에 오기 전 10년 공부가 마치 ‘수박 겉 핥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구인순씨)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이곳에 있는 분들은 정말 복이 많은 분들이다.”

스님과 재가불자 누구를 막론하고 공부하는 사람에 관한 한 조실 스님의 지도에는 차별이 없다.

조실 대원스님에게는 “해제기간에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이들이 바로 진정한 수행자요, 부처님이다”

공주=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이시영 충남지사장 lsy@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조실 대원스님이 들려주는

‘화두참구시 참작하고  명심해야 할 사항’



1. 빨리 깨쳐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지 말라.

2. 잠자는 것, 먹는 것은 절도 있게 하라.

3. 대중생활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좋지 않은 일이 닥치더라도 피하지 말고 잘 대처하여 일이 없도록 하고 살아야 된다. 순경계를 만나 일이 없는 편안함에 머물면 공부를 소홀하게 하여 게을러질 염려가 있으므로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대중에게 꾸지람과 경책을 받고 큰 신심과 분심을 일으켜 다시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4. 참선하는 동안은 조사어록 경전 등 모든 책과 신문을 보지 말라. 마음 밖의 인연은 모두 놓고 안으로 참구하는 ‘그 놈’을 구하라.

5. 망상이 들어오면 느끼는 그 즉시 소고삐를 잡아채듯 되돌려 놓으라.


[불교신문 2425호/ 5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