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얘기

조계총림 송광사 동안거 해제 현장

 

조계총림 송광사 동안거 해제 현장

“결제도 없고 해제도 없다”

 

 

3개월간 은산철벽을 꿰뚫고자 가열찬 정진을 거듭했던 안거가 마무리되는 2월21일 동안거 해제일. ‘목우자’ 보조지눌스님의 목우가풍(牧牛家風)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조계총림 송광사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사진>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이 해제법회에서 법어를 내리고 있다.
 
어김없이 새벽2시에 일어난 스님들은 새벽예불과 공양을 마쳤다. 부산할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다행스러울 즈음, 대중 스님들의 발걸음이 한 곳으로 향했다. 오전8시 ‘사자루’에서는 포살법회가 시작됐다.
 
송광사 사부대중 100여 명이 모인 사자루에는 해제라는 가벼운 설렘도 느낄 수 없었다. 이윽고 송광사 주지 영조스님이 사자좌에 올랐다. “비구보살 영조는 머리 숙여 예배하옵고 대중스님들께 사뢰옵니다. 스님네가 불러서 송계하게 되었사오니, 혹 잘못이 있더라도 자비로 지시하여 주옵소서.”
 
매월 보름마다 포살법회를 봉행하고 있는 송광사에서 이날 포살은 해제일이라는 특별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묻노니 이 가운데 청정하십니까. 여러 대덕들이여 이 가운데 청정하여 잠잠하므로 이 일을 이와 같이 지닐 것입니다.”
 
<범망경 보살계본>을 낭송하는 속에 대중스님들은 지난 3개월간의 정진에서 스스로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는지, 대중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묻고 또 물으며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받듯이 대중스님들은 3배하며 청정한 수행자로 돌아갔다.
 
송광사 해제법회는 바로 그 자리에서 봉행됐다. 방장 보성스님은 사자좌에서 해제법어를 설했다. “금년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추웠다. 그러나 공부에는 추위와 더위가 없다. 그 가운데서 오직 각자가 가진 초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추위와 더위에 끄달리다 보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생각해보라. 해제라고 하면 공부를 마쳤다는 말인가. 어느 정도 함께 할 수 있는 기간을 조금 떨어뜨리고 쉬자는 것인가. 우리는 일등 출가인이다. 그 일대사를 마치기 전에는 결제도 없고 해제도 없다.”
 
방장스님이 “악”하는 할과 함께 주장자를 한 번 내리치자 수행납자들은 해제기간 품고 살 소중한 경책을 받들겠다는 표시인양,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
 
송광사에서는 이번 동안거 동안 30명의 수행납자가 방부를 들였다. 대웅보전 뒤편에 자리한 수선사와 왼편에 위치한 문수전, 두 곳에서 장장 90일 간 가행정진에 돌입했다.
 
송광사 선원은 보조지눌스님과 효봉스님, 구산스님으로 이어지는 수행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교과서적인 일정을 진행하는 데서 송광사 선원에 방부를 들여 해제한다는 것은 납자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만 하다. 수행환경 또한 걸작이다. 깊은 산중이라 휴대전화는 무용지물이고, TV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세상과의 영원한 단절은 그저 수행정진밖에 할 것이 없다는 말을 탄생하게 했다.
 
송광사는 이를 뒷받침하는 청규가 있다. 그 가운데 특이한 것은 개인차량을 이용해 송광사에 들어오면 그날로 바로 퇴방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송광사의 안거는 수행납자가 철저하게 확철대오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을 모두 갖췄다.
 
해제 전날 납자들은 자자를 했다. 송광사 유나 현묵스님은 “안거 기간 중 실수 했거나 허점을 남긴 것이 있는지 묻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적해달라고 간청하는 자자는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속에 또 다른 힘을 얻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수행납자들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방장 보성스님의 말씀을 가슴 속에 품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출가인의 일대사를 마치기 전까지 결제도 없고 해제도 없다.”
 
송광사=김하영 기자
사진 신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