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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1400여년 전 백제 사리장엄구 발견

 

1400여년 전 백제 사리장엄구 발견

국내 最古…부여 왕흥사 목탑지서

 

부여 왕흥사지 목탑지에서 전성기 백제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리장엄구가 발굴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은 24일 왕흥사지 발굴조사 자문위원회를 열고 “백마강변 왕흥사터 목탑지 심초석 사리공에서 1430년 전에 조성된 금은동 사리장엄구와 곡옥, 오색옥구슬, 금실 동전 등 다양한 진단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특히 백제시대 목탑지에서 사리기가 봉안된 사리장엄구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청동사리함과 은제사리병, 금제사리병의 모습.

또 청동사리함과 은제사리병, 금제사리병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용민 소장에 따르면 발견당시 사리장엄구는 16×12×16㎝의 사리공 내부에 사다리꼴의 화강암 뚜껑에 덮여있었다고 한다. 높이 10.3cm의 원통형 청동사리함 내부에 6.6×4.4㎝의 은제사리병을 봉안하고, 그 안에 다시 4.6×1.5㎝의 금제사리병을 봉안한 형식이다. 석함까지 포함하면, 4중장치가 돼 있었던 것이다. 또 은제사리병 속에는 금제사리병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받침대까지 만들어놓아 세밀함을 보여준다.

국립고궁박물관 김연수 과장은 “능산리 사지에서 사리석감이 발견됐지만 실제 사리구가 없어 고대 사리장엄구 원형을 알 수 없었다”며 “이번 발굴을 계기로 한반도 고대의 사리신앙은 물론 신라, 일본으로 전승된 양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리장엄구 내에서 사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은제함 안에 작은 알갱이가 확인됐고, 금은제 사리병 내에는 맑고 투명한 물이 차 있었다고 한다. 연구소 측은 현재 이 액체에 대한 성분 분석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 발견된 왕흥사지 사리장엄구는 또 명문이 확인된 사리장엄구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 청동사리함에 새겨진 명문.

청동사리함 외부에 음각체로 새겨진 명문을 살펴보면, “정유년 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고 본래 사리 2매를 묻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爲亡王/子立刹本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고 적혀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유년은 생전에 창왕이라 불렸던 백제 위덕왕 577년을 말한다. 계명대 안중국 교수는 “그동안 법흥사지는 삼국사기 기록에 의해 법왕 2년인 600년에 축조돼 무왕 35년인 634년에 낙성됐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사리장엄구 발견으로 삼국사기 기록보다 23년 빠른 시기에 사찰이 새워졌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목탑지 심초적 주변에는 목걸이 및 팔찌, 비녀, 금제귀고리 등 장신구와 구슬로, 옥류, 금제품, 은제품 등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또 운모로 만든 연꽃과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제에서 사용됐던 상평오수전 등이 확인돼 백제시대 장신구 및 대외관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 유홍준 청장은 “사리장엄구와 진단구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백제의 공예기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조만간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해 세계의 학자들과 발굴성과를 공유하고 연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부여=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