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사찰] 물위에 떠 있는 연꽃 십승지, 마곡사

공주 마곡사는 태화산 국사봉과 서쪽의 옥녀봉, 동쪽의 무성산 등 나지막한 산들이 절을 에워싸고 희지천(禧之川)이 절의 중심을 가로질러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형상이라 한다. 도선국사는 “천만년 오래도록 절이 들어앉아 있을 터이며 삼재가 들지 못하는 곳”이라 했고, 남사고는 “병란을 피할 만한 땅인 십승지(十勝地)”라 했으니 마곡사는 모든 생명을 살리는 길지임을 알 수 있다.
마곡사는 ‘마(麻)가 들어찬 것처럼 태화산 골짜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절’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육조혜능선사의 법맥을 이은 보조체징과 낭혜무염선사가 선종으로 불교에 새 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와 함께 경사스런 일들이 일어났으므로 “희지천”이라 했다. 옛 사람들은 “골짜기 깊숙이 돌아 들어가면 아름다운 물과 돌은 볼 만하다”고 했다.
➲ 금강역사가 지키는 해탈문
들어가는 입구엔 금강역사가 지키는데 왜 해탈문이라 했을까? <금강삼매경>에 주관과 객관의 모든 존재가 비어있어 차별의 모습을 떠나는 무상해탈(無相解脫)의 문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실천이 없다면 해탈은 어렵다. 이 문을 통해 몸에는 인욕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날카로운 지혜의 칼을 잡아 거리낌 없이 나쁜 길로 나아감을 막아 해탈의 즐거움을 누려야 할 것 같다.
<격언집> ‘증광현문’에 “서로 만나서 한 잔하지 않고 빈 채로 돌아가니 동구 밖의 복숭아꽃도 그 사람들을 비웃는다(相逢不飮空歸去 洞口桃花也笑人)”는 글이 있다. 친구를 만나면 한잔하는 정담이 있어야 하듯, 사찰에 오면 그 무엇인가 느낌이 있어야 한다. 해탈문을 지나면 천왕문의 광목천왕은 여의주 대신 과일을, 다문천왕은 보탑 대신 고추, 복숭아, 살구 등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어 이젠 사천왕도 지역특산물 홍보대사가 되었나 보다.


➲ 마곡사 위상 알려주는 대광보전
희지천이 흐르는 극락교를 건너면 북쪽에는 1788년에 다시 지어 웅장한 대광보전을 맞이한다. 편액은 당시 최고의 화가 강세황이 쓴 글씨와 용마루의 중앙에 있는 한 장의 청기와는 당시 마곡사의 위상을 알려준다. 내부에는 동향으로 앉아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은 안온하고 인자한 모습이다. 뒷벽에는 19세기 초에 종이를 여러 겹 벽에 바르고 그린 5.15m×2.96m의 반가부좌한 백의관음보살이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근처 관음 죽이 솟아난 험난한 바위를 배경으로 붉게 피어오른 연꽃을 밟고 있다.
파랑새를 들고 법문을 듣는 선재동자와 정병(淨甁)에 꽂혀있는 푸른 버들가지는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좁고 어두운 뒷벽에 관세음보살님을 모셨을까? 조용히 관세음보살의 신통과 자재를 느끼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혜지스님은 ‘찬관세음보살송’에서 “저는 벽에 그려진 관세음보살님을 보고서 색상과 모든 공덕을 두루 보며 신통과 대자재를 봅니다”라고 기도했다.
또한 대광보전에는 무수한 벽화가 벽면에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한산습득도(寒山拾得圖)’는 붉은 도포를 입은 한산은 시를 읊고, 푸른 도포를 입은 습득은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다말고 한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날 습득이 땅을 쓸고 있는데, 절의 주지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풍간이 주워 왔기 때문에 습득이 되었다. 그대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 습득이 쓸던 비를 내려놓고서 합장한 채 서 있었다.
주지가 다시 묻자, 습득은 비를 들어 낙엽을 쓸고는 가버리자 주지는 멍하니 바라보아 ‘차수이립(叉手而立)’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정말 멋진 습득의 행동이다. 본래 면목을 보여주었으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떨어진 낙엽과 같은 것. 쓸고 갈 수밖에. 마곡사 벽화에 숨어 있는 선의 향기를 본다면 갈라진 벽 틈 사이에서도 진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또 대광보전에는 재미난 전설도 있다. “어떤 걷지 못하는 사람이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올리며 백일 동안 법당 바닥에 깔 삿자리를 짰고 기도를 끝마치자 삿자리도 완성되어 부처님께 절을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삼배를 하고 걸어 나갔다”고 한다. 지극정성이면 돌부처님도 돌아본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삿자리 일부를 볼 수 있다.
대광보전 마당에는 가늘고 긴 오층석탑(보물 제799호, 일명 다보탑 또는 금탑)이 있는데, 기단에는 영기문, 탑신에는 아촉불, 보생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이 새겨져 있고 화려한 보주를 얹은 상륜이 특이하다. 이 상륜을 풍마동(風磨銅)이라 하는데 옛 사람들은 “풍마동은 그 귀하기가 금보다 배나 더하니, 바람에 쏘이면 누런빛이 더욱 찬란하다”고 했다. 대광보전 옆에는 예스런 심검당과 고방이 있는데, 심검당 편액은 정조대왕이 극찬을 한 조윤형의 힘찬 글씨이다. 심검당 툇마루에 있었던 1654년 충청도 안곡사에서 주성한 범종에는 짚신을 신은 스님의 모습이 양각되어 재미있다.
“대웅전 싸리나무 기둥 안아보았느냐?”
오른쪽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각순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이 1651년에 중창한 대웅보전이 나오는데, 편액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로 전해지고 있다. 외부 멀리서 보면 대광보전과 함께 커다란 하나의 건물로 보여 위용을 나타낸다. 내부에는 17세기 중엽에 나무로 조성한 석가, 약사, 아미타 삼세불은 전각 2층에 창호가 달려 자연채광으로 더욱 아름답다. 또한 둘레 2m가 넘는 커다란 싸리기둥이 눈길을 끄는데,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마곡사 대웅전 싸리나무 기둥을 안아보았느냐?”고 꼭 물어 본다고 한다. 그러면 ‘예!’ 대답하면 바로 극락으로 보내준다는 전설이 있다.
대웅보전을 내려오면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1896년 21살의 나이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 후 마곡사로 숨어들어 원종(圓宗)이라는 스님이 되어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여 선생의 사진과 글씨 등을 전시한 ‘백범당(白凡堂)’ 전각과 1946년 마곡사를 방문한 김구 선생이 옛일을 회상하며 심은 향나무도 볼 수 있다.

대광보전 ‘백의관음도’. 파랑새를 들고 법문을 듣는 선재동자와 정병(淨甁)에 꽂혀있는 푸른 버들가지는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불교미술의 寶庫…남방화소 중심
다시 희지천을 건너면 1651년 중건된 영산전을 볼 수 있다. 과거칠불을 중심으로 현겁천불이 있어 천불전의 기능을 지닌다. ‘영산전’ 편액은 세조대왕의 친필로 은거해 있던 매월당 김시습을 찾아왔지만 김시습이 급히 떠나버려 세조는 “임금을 버리고 떠났으니 타고 온 연을 탈수 없다”고 하여 소를 타고 갔다고 한다. 그때 임금이 타고 온 가마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마곡사는 그야말로 불교미술의 보고(寶庫)이다. 운혜, 약효, 문성 등 불모(佛母)를 길러낸 조선후기 남방화소의 중심 사찰답게 전각, 형상불, 불화 등 최고를 자랑한다. <대방광불화엄경>에 “절에 들어가 편액을 살피니 겉을 보고서 속을 알아차렸다(入寺看額 見表知裏)”는 말이 있다. 마곡사를 찬찬히 둘러보면 선의 향기가 아직도 천하의 명산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불교신문3680호/2021년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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