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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선지식] 67. 홍경장육

 

67. 홍경장육

 
출가 전에 한학을 깊이 공부하고, 입산 후에는 교학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홍경장육(弘經藏六, 1899~1971)스님. 10년간 금강산 건봉사 강주로 후학을 양성한 스님은 참선수행은 물론 어산과 염불에도 능했으며, ‘당대의 명필’로 명성을 떨쳤다. 평생 소박하고 담백한 생활로 후학들의 귀감이 된 홍경스님의 수행일화를 영축총림 통도사에 있는 비문과 상좌 성림스님(통도사 시탑전)의 회고로 돌아보았다.
 
 
 
 
“지혜로 미혹한 중생 저 언덕에 이르게 하소서”
 
  
  참선 ·교 학 · 어산 두루 겸비…소박한 삶
 
  당대 명필로 명성 높아…타의 추종 불허
 
 
○…홍경스님은 금강산 건봉사 강원에서 10년간 강주로 있으면서 후학을 지도했을 만큼 뛰어난 교학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화엄경> 강의에 탁월하여 ‘화엄좌주(華嚴座主)’로 추앙받았다. 또한 스님은 <금강경오가해>에 대해서도 깊은 식견이 있었다. 전 해인총림 해인사 주지 환경(幻鏡, 1887~1983스님이 “학식과 글씨가 나보다 백배는 낫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홍경스님은 어산(魚山)과 염불에 두루 능통했다. 특히 ‘경기범패’는 홍경스님 아니면 시연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영축총림 통도사에 주석할 무렵인 1958년부터 다음해까지 2년간 강원 학인들에게 염불을 가르쳤다.
 
○…당대의 명필로 명성을 얻었던 스님의 글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거침없이 내려간 글씨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서예가 운여(雲如) 김광업(金鑛業,1906~1976)이 국전(國展) 심사위원장 시절 “어떻게 홍경스님 글씨를 심사할 수 있느냐”면서 그 자리에서 ‘특선’을 주었을 만큼 인정 받은 명필이다. 홍경스님 작품은 위작(僞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독특한 세계를 자랑한다.
 
<사진> 선교는 물론 어산에도 능했던 홍경스님은 평생 소박하고 담백한 삶을 보냈다. 남아 있는 사진도 거의 없다. 자료제공=조계종 총무원
 
○…홍경스님은 글씨를 쓰면서 ‘麥門館主人(맥문관주인)’이란 낙관을 주로 사용했다. 맥문이란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등 육바라밀을 표현한 것으로, 스님의 수행하는 자세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법명 장육(藏六)에도 육바라밀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담백한 생애만큼이나 맑은 기품을 지닌 글씨를 썼던 홍경스님 영축총림 통도사의 ‘藏經閣(장경각)’, 구미 도리사의 ‘東國最初伽藍(동국최초가람)’ ‘太祖山桃李寺(태조산도리사)’, 제천 강천사 편액, 부산 선암사 편액 등을 남겼다.
 
○…홍경스님은 글씨뿐 아니라 손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일에도 능숙했다. 손재주가 남보다 뛰어났던 것이다. 때문에 불사를 하면서 나무 다룰 일이 있으면, 당신이 직접 목수 일을 자청하고 나서기도 했다.
 
 
 
구미 도리사에 있는 홍경스님 친필. ‘동국최초가람’ ‘태조산도리사’라고 쓰여 있다.
 
 
○…동진출가해 평생 홍경스님을 시봉한 성림스님은 13세 무렵 은사에게 따끔하게 혼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바둑을 두다 은사에게 들켜 눈물이 쏙 나오도록 혼이 났다고 한다. 당시 홍경스님은 “바둑을 끊어라. 출가하여 그런 것을 하면 안 된다”면서 따끔하게 경책했다. 그날 성림스님은 세끼나 굶어야 했고, 회초리 50대로 종아리가 멍들었다. 그 후로 성림스님은 바둑을 두지 않는다. 성림스님은 “은사스님은 까다롭고 엄한 분”이라면서 옛일을 회상했다.
 
○…홍경스님 상좌가 다른 스님들과 몰래 마을에 나가 자장면을 한 그릇 먹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뒤늦게 그 같은 사실은 안 홍경스님은 불같이 야단을 쳤다. “네 이놈, 출가한 놈이 어찌하여 고기가 들어 있는 자장면을 먹었느냐.” 제자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네가 한 짓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아느냐.” “……” “계율을 잘 지켜야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그날 자장면을 먹은 제자는 법당에 가서 108 참회를 해야만 했다.
 
○…홍경스님은 왜색불교를 타파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에도 적극 참여했다. 1947년 청담.자운.성철.향곡.성수.도우.법전.종수스님 등과 함께 ‘봉암사 결사’에 동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화불사 당시인 1955년에는 초대 경남종무원장을 지내며 한국불교의 초석을 놓았다.
 
○…세월이 흐르면 육신과 이별을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홍경스님도 육신을 벗을 시기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았다. 어느 날 제자를 불러 앉힌 스님은 “내가 세상을 떠나거든 즉시 화장한 후에, 유골은 수습하지 말고, 그 재를 산에 뿌리라”고 당부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면서 평생 소박하고 담백하게 살았던 홍경스님이 지닌 마음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통도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 홍경스님 서찰
 
홍경스님은 석주스님과 도반으로 지내며 교류가 잦았다. <석주스님 소장 남은 글월 모음>에는 홍경스님이 석주스님에게 보낸 친필 편지가 실려 있다. 두 스님의 각별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1962년 7월7일(음) 보낸 편지에서 홍경스님은 “無藩漢(무번한)은 僅支(근지)이압고 亘蒙無念之惠潭(긍몽무념지혜담)하야 自在遊(자재오유)하나이다”라고 쓰고 있다. “정해진 거처가 없는 저는 근근이 지탱하옵고, 항상 무념(無念)의 혜택을 입어 사방을 마음껏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다음은 1966년 9월9일(음) ‘법공양(法供養)’이란 제목으로 역시 석주스님에게 보낸 서찰 내용이다.
“誠刊維摩詰經(성간유마힐경) / 供養第三之寶(공양제삼지보) / 慈悲及於弘經(자비급어홍경) / 却不恭受太慢(각불공수태만) / 歡喜無比雀躍(환희무비작약) / 禪悅有越樂淨(선열유월낙정) / 惟願(유원)/ 出資慧福無量(출자혜복무량) / 引勸六和常住然後(인권육화상주연후) / 速爲洪濤智楫(속위홍도지즙) / 廣度欲岸迷倫(광도욕안미륜)” 한글 풀이는 다음과 같다. “성심으로 간행한 유마힐경 / 제3의 보물을 공양하시니 / 대자비가 홍경에까지 이르렀음이라 / 공손히 받아 큰 게으름을 물리치니 / 그 환희가 작약에 비할 수 없고 / 선열은 극락정토를 넘어서네 / 오직 원컨대 / 출자한 이들에게 한량없는 지혜와 복을 / 인권한 이들은 육화합 속에 머물게 하소서 / 속히 큰 파도를 지혜의 돛으로 건너 / 미혹한 중생 모두 저 언덕에 이르게 하소서.”
 
 
 
■ 행장
 
1899년 7월9일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가곡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정호(金正鎬) 선생이고 모친은 달성 서(徐)씨. 속명은 김훈경(金勳經), 본관은 경주.
 
건봉사 강주로 후학 양성
 
정화불사후 경남종무원장
 
유교적인 집안에서 성장하였으며, 출가하기 전까지 한학을 공부했다. 24세 되던 해에 고성 건봉사로 출가해 철우대후(鐵牛大吼)스님의 법을 이었다. 법명은 처음에는 성전(聖典)이라고 하다, 훗날 장육(藏六)으로 했다.
 
27세에 동선(東宣)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30세에 건봉사 대교과를 졸업했다. 건봉사에서 좌주(座主, 강주)로 후학을 지도하던 스님은 35세에 참선수행을 하기 위해 덕숭산 정혜사로 갔다. 만공(滿空)스님 회상에서 정진하면서 수좌의 길을 걸었다. 부산 금정선원장을 역임하며 납자들을 맞이했다.
 
1955년 정화불사가 진행되면서 경남종무원장(부산 대각사)을 지낸 후 영축총림 통도사에 주석하기 시작했다. 명필(名筆)로 명성이 자자했던 스님은 ‘麥門館主人(맥문관주인)’이라는 낙관을 사용했다. 또한 범패(梵唄)에도 뛰어났다.
 
<사진> 영축총림 통도사에 있는 홍경스님 비. ‘화엄좌주 홍경당 대선사비’라고 쓰여 있다. 운허스님이 찬을 하고 무불스님이 글씨를 썼다.
 
노년에 스님은 김해군 명지면 청목리(지금은 부산시 북구)에 있는 청량사(淸凉寺)에 주석하면서 불자들을 지도하고, 사격(寺格)을 일신하는데 공헌했다.
 
스님은 1971년 8월16일 부산 청량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3세, 법납 50세. 부산 선암사 다비장에서 다비를 엄수했다. 제자로 성림(星林, 통도사 시탑전)스님 등이 있다.
 
 
[불교신문 2555호/ 9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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