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교리와법문

[고승]대각국사 - 스님의 학식.수행자 면모 ‘한눈에’

 

대각국사 - 스님의 학식.수행자 면모 ‘한눈에’


고려시대 천태종의 개조(開祖)이며 선과 교의 수행을 함께 추구한 대각국사 의천스님(義天, 1055∼1101). 고려시대 대표적인 고승이자 불교학자였던 의천스님은 왕자로 태어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11살에 출가해 47세의 나이로 입적할 때 까지 오직 구법(求法)과 전등(傳燈)을 발원하며 수행과 학문을 닦았다. 불교교학의 연구서만을 집대성한 교장(敎藏)의 간행, 활발한 국제교류 등 스님의 활동과 업적은 당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 전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문화관광부는 스님의 이러한 업적을 널리 기리기 위해 스님을 2001년 11월 문화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좌우에 얼룩 있지만 보존 양호

선만으로 윤곽 표현…단조로워

<사진> 순천 선암사에 소장돼 있는 대각국사 의천스님의 진영.

1055년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의천스님의 휘(諱)는 후(煦)이고, 자(字)는 의천,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다. 스님의 여러 업적 중에서도 천태종의 개창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천태종 개창의 뜻은 일찍부터 갖고 있던 스님은 어머니인 인예태후가 국청사를 짓기 시작한 선종 6년(1098)부터 본격화 된다. 이후 국청사가 완공되고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천태교관을 강설하는 등 선교 통합을 위해 헌신했다.

이처럼 한국불교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의천스님의 진영은 순천 선암사성보박물관에 잘 봉안돼 있다. 가로 110.2㎝, 세로 144㎝ 크기의 비단에 채색된 스님의 진영은 지난 1990년 9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044호로 지정되는 등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후기인 1805년(순조 5년) 7월 도일스님에 의해 수정.보완된 이 진영은 의자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좌우 가장자리에 습기로 인한 얼룩이 있어 일부 굴곡진 부분의 훼손이 있지만,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원본의 제작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 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수작이다. 진영은 흑갈색 골격의 의자에 앉아 왼손으로는 긴 주장자의 중간을 잡고 오른손은 팔목에 염주를 낀 채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다.

사색에 잠긴 신비스러운 눈빛과 넓은 이마, 큰 귀, 다문 입에서 스님의 학식과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굵은 목과 가슴, 듬직한 체구에 녹색 장삼을 입고 홍색가사를 걸치고 있고 금빛의 둥근 가사고리로 매듭을 대신했다. 가사와 장삼은 농담의 변화가 없는 짙은 채색과 선만으로 윤곽과 흐름을 묘사하고 있어 천의 질감을 느낄 수 없고 단조로운 모습이다.

또 이 진영에는 고려 말 고승 나옹 혜근스님이 의천스님을 업적을 기리는 찬문이 기록돼 있어 가치를 더 해주고 있다. 혜근스님은 찬문에서 “임진년 늦봄 전단 혜근 고개 숙여 절하고 공경히 찬하다. 고려 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시다. 송 철종황제가 국사로 삼다. 진수 정원 법사의 법을 잇다”라고 의천스님의 행장을 소개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03호/ 2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