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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자장율사 - 스님의 ‘꼿꼿한 기개’ 물씬

 

자장율사 - 스님의 ‘꼿꼿한 기개’ 물씬

 

신라 호국불교의 상징인 경주 황룡사 9층 목탁을 세우고 영축총림 통도사를 창건한 신라시대 고승 자장스님(慈藏, 590~658). 특히 스님은 통도사에 한국불교의 계율을 상징하는 ‘금강계단(金剛寶戒)’을 세워 교단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헌신함으로써 불교계 안팎에는 자장율사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녹색 붉은색의 조화 ‘화려’ 전체적 단아한 풍모 엿보여


<사진> 양산 통도사 개산조당에 봉안돼 있는 자장율사 진영.

신라시대 진덕여왕 당시 활약한 자장스님의 속성은 김, 이름은 선종으로 진골 출신인 소판 벼슬을 지낸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몸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4월8일 부처님의 탄신일에 스님을 낳았다고 한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자 처자를 버리고 출가, 계율을 지키는 것을 기본 종지(宗旨)로 삼는 신라 남산종(南山宗)의 개조(開祖)로 전국 각처에 통도사, 월정사 등 사찰 10곳을 창건했다. 또한 진덕여왕 4년(650년)에는 중국 당나라의 연호를 도입하고 신라에 처음으로 관복을 입도록 하는 등 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만년에는 강릉에 수다사를 창건하고 태백산 석남원(현재의 태백 정암사)에서 여생을 마칠 때 까지 중생제도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장스님이 입적한 후 제자들은 스님의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진영을 조성했다. 스님의 진영을 모신 사찰은 양산 통도사가 대표적이다. 자장율사는 636년(선덕여왕 5년)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를 받아와 통도사 금강계단에 모시고 스님이 되고자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출가사문의 길로 인도했다.

통도사가 불보 종찰로 불리는 까닭도 이곳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이다. 스님은 이 산이 인도의 영취산과 닮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영취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통도사는 계율의 근본도량이 되었고, 신라의 승단을 체계화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는 율원(律院).선원(禪院).강원(講院) 등을 갖춘 총림(叢林)인 ‘영축총림’으로 불리며 종단 주요 교구본사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특히 통도사의 진영은 현재까지 보존상태가 양호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통도사 개산조당에 봉안돼 있는 자장스님의 진영은 지난 1990년 12월20일 경남유형문화재 제276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조선후기인 순조 4년(1804년)에 풍오(豊悟)스님의 증명과 양공계한(良工戒閑), 화원성인(畵員成仁) 등에 의해 조성된 스님의 진영은 가로 96㎝, 세로 146㎝ 크기의 비단에 채색됐다.

이 진영은 얼굴과 몸이 약간 오른쪽을 향한 상태에서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전신좌상이다. 긴 술이 달린 불자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긴 술의 끝 부분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고, 의자 앞 받침대에 벗어놓은 신발의 색깔과 문양이 화려하다. 배경을 어두운 녹색으로 처리했는데, 붉은색의 의자가 잘 조화된 색의 대비를 보이고 있고, 녹색의 장삼과 붉은색의 가사가 뛰어난 색의 대비를 보인다.

이처럼 녹색과 붉은색을 기본색상으로 하여 화려한 듯 단조로운 구도를 보여줘 조선시대 진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400호/ 2월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