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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의상대사 - 화엄종 開祖의 풍모 물씬

 

의상대사 - 화엄종 開祖의 풍모 물씬



“듣자오니 상인(上人)께서 귀향하신 후 화엄을 천명하고 법계의 무진연기(無盡緣起)를 거듭 선양하여 새롭고 새로운 불국에 널리 이익케 하신다 하오니 기쁨이 더욱 큽니다. 이로써 여래께서 입멸한 후에 불일(佛日)이 휘황하게 빛나고 법륜이 다시 굴러 불법이 오래 머물도록 한 이가 오직 법사뿐임을 알았습니다.”


日고신지 소장 진영 ‘最古’

귀족.학자적 인품 담아내

<사진> 일본 고산사에 소장돼 있는 의상대사 진영. 사진제공=직지성보박물관. 한국고승진영전 도록 <깨달음의 길을 간 얼굴들>


중국 화엄종의 3조로 추앙받는 법장스님이 신라시대 고승 의상(義湘, 625~702)대사에게 보낸 편지글(賢首奇海東書) 가운데 일부다. 중국 화엄종을 정립했다는 법장스님이 더없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냈을 만큼 의상스님의 법력이 중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의상스님은 흔히 ‘해동화엄(海東華嚴)의 초조(初祖)’로 불린다. 스님이 중국에서 배워온 화엄학을 널리 소개해 우리나라 화엄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19세 되던 해 경주 황복사에서 출가한 의상스님은 650년 중국에 건너가 8년 동안 중국 화엄종의 2조인 지엄스님 문하에서 화엄학을 연구했다. 의상스님에게 편지글을 보낸 법장스님도 이때 함께 수학한 동문이다. 이후 670년 귀국한 스님은 경북 영주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평등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화엄사상을 신라인들에게 설파하는 등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의상스님의 진영은 함께 유학길에 오르다 대중교화에 눈을 돌리게 된 원효스님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사찰에서 숭배되어왔다. 고려시대 문헌에 기록된 의상스님의 진영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후기작으로 추정되는 고흥 금탑사 진영, 영주 부석사 조사당에 소장돼 있는 진영 등이 있다. 이러한 진영들은 고승의 진의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불보살처럼 상상화 된 예배대상으로 그려진 그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진영이 훼손되면 이모(移模)한 후 원본을 땅에 매장하거나 불에 태워 없애는 불가의 전통에 따라 오랜 세월동안 몇 차례의 이모를 통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진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 고산사에 있는 의상스님과 원효스님의 진영이다. 이 진영은 의상스님과 원효스님을 존경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고산사(高山寺)에서 15세기부터 보관해 오던 것이다. 그 동안 고산사 소유의 교토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으나, 사진촬영이나 대여가 허용되지 않아 국내에서 볼 수 없다가 지난 2000년 10월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이 ‘한국 고승 진영전’을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했다.

이들 진영은 우리나라의 의상스님과 원효스님의 진영을 보고 이모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14~15세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신지의 의상스님 진영은 102.1×52.6cm로 비단에 채색돼 있는데, 귀족적이고 학자적인 인품을 지닌 의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어 예술적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문화관광부도 한국불교의 큰 족적을 남긴 화엄종 개조(開祖) 의상스님을 “우리나라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고 국민귀감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며 2004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396호/ 1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