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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종조 도의국사 - 禪사상 이 땅에 알린 선각자

 

종조 도의국사 - 禪사상 이 땅에 알린 선각자


한국정신문화의 근간이 돼 왔던 불교의 맥을 이어온 스님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승진영(高僧眞影)이다. 진영은 덕 높은 스님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초상화는 대상인물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정으로 그려지는 기록화로 스님의 겉모습과 내면의 정신세계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제한된 화면에 표현했다. 때문에 진영은 초상화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 조사신앙의 예배대상이 되는 불화로소의 의미도 지닌다. 


 종립선원 석남사에 봉안

 아홉 선사 함께 모셔져

<사진설명> 울산 석남사에 모셔져 있는 조계종조 도의국사의 진영.

선종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바로 봄으로써 성불이라는 자아의 완성에 이를 수 있다고 해 굳이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있다. 부처님이 제자인 가섭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로 법을 전했듯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맥을 전하는 것을 경전보다 중시했다. 때문에 스승을 소외경전처럼 받들고 깨달음의 경지가 담겨있는 모습을 그린 고승진영은 조사신앙의 예배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아래 조성된 진영은 한 사찰에 수십여 점씩 봉안되기도 했다.

종파의 시조(始祖)나 사찰의 창건주를 비롯해 역대 고승들의 모습이 비단화폭에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 선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 종조로 추앙받고 있는 도의국사(道義國師)의 진영이 대표적이다. 도의국사의 성은 왕(王)씨, 법호는 명적(明寂), 시호는 원적(元寂). 통일신라 말인 784년 당나라로 건너가 개원사에서 서당지장(西堂智藏) 선사에게 불법을 이어받은 뒤 귀국해 신라에 선종(남종선)의 씨를 뿌렸다.

당시 서라벌 중심의 왕권불교와 대립하며 진보적인 선사상을 전파했던 도의국사는 말년에 양양 진전사로 들어가 은둔했다. 이후 도의국사의 심인(心印)은 염거화상-보조체징에게 전해졌으며, 체징스님은 헌안왕 3년(859년) 전남 장흥 보림사를 창건하고 도의국사가 전한 선풍을 진작(振作)하고, 청도 운문사, 군위 인각사 등을 아우르며 선문의 큰 파도를 일으킨 가지산문(迦智山門)을 형성해 한국불교 선종사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한국불교사의 한 획을 그은 도의국사의 진영은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인 석남사에 봉안돼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1064번지 가지산(迦智山)에 자리 잡은 석남사는 영축총림 통도사 말사로 우리나라 최초로 선을 들여온 도의국사가 824년 창건한 선찰이다. 821년 귀국한 국사는 헌덕왕의 청에 설법을 하고, 824년 이곳에 선문을 개창했다. 국사가 머물러 산명을 가지산으로 바꿨는데, 석남사란 이름은 이 산의 이름이었던 석안(石眼)산의 남쪽에 있어 명명했다는 설화와 국사가 운문산 남악에서 설법하니 많은 돌들이 머리를 조아려 석남이라 했다는 설화 등이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사찰을 조선 현종 때 중수했고, 1957년 근현대 한국불교에서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인홍스님(1908~1997)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20여 년 간 진행된 불사를 통해 종단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자리매김 했다.

도의국사의 진영도 인홍스님이 1974년 조사전을 중건하면서 봉안된 것. 이곳에는 도의국사 양옆으로 월하당, 최운당, 경월당, 남호당, 원허당 선사 등 9명의 선사 진영이 함께 모셔져 있다. 이처럼 도의국사가 한국선불교에 미친 영향이 막대한 만큼 조계종은 지난 2004년부터 종조 다례재를 봉행하고, 표준영정제작에 나서는 등 종단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불교신문 2392호/ 1월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