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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고승]진감국사 - 비범한 눈매에 담긴 ‘위엄’

 

진감국사 - 비범한 눈매에 담긴 ‘위엄’



“산은 성과 함께 적연하고, 골짜기는 범패소리로 울려 펴졌도다. 도는 다섯 임금이 흠모했고, 위엄은 모든 요귀와 마귀를 물리쳤도다. 묵묵한 자비의 음덕을 드리우고 임금들의 부름을 거부했네.” 신라시대 최고 문장가인 최치원이 신라의 악성(樂聖)이자 선승(禪僧)인 진감국사를 찬탄하며 이른 말이다.

中 차나무 도입…茶문화에 기여

범패 통해 ‘불교음악’ 부흥 한획


<사진> 하동 쌍계사에 봉안돼 있는 진감국사 진영.

조계종 제13교구본사 쌍계사의 중창조이자 불교음악인 범패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신라시대 고승 혜소스님(慧昭, 774∼850). 중국으로부터 차나무를 들여와 차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스님은 최치원의 찬탄처럼 우리에게 진감국사(眞鑑國師)로 널리 알려진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진감국사의 속성은 최씨, 본관은 전주다. 법호는 혜소, 시호가 진감인 스님은 비교적 늦은 31세의 나이로 출가했다. 804년(애장왕 5)에는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창주(滄州)에서 신감대사(神鑑大師)의 제자가 되었고, 이후 부단한 정진과 수행을 계속하여 810년(헌덕왕 2) 당나라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종남산(終南山)에 들어가 선정과 지혜를 닦으며 참선하고 실천적 선수행을 통해 독자적 선사상을 형성했다.

830년(흥덕왕 5년)에 귀국한 스님은 국왕의 환대를 받으며 상주 장백사에 주석했다. 또 지리산에 쌍계산문을 개창하고, 남종선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와 함께 스님은 쌍계사에 머물며 육조 혜능 대사의 영당(影堂)을 세웠다. 특히 중국에서 배워 온 범패(梵唄)를 이곳에서 발전시키고 가르쳐 우리나라 범패의 효시로 불린다. 문화관광부는 이러한 업적을 선양하기 위해 스님을 2000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고 기념음악회, 학술세미나, 다례 및 영산제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했다.

이처럼 범패를 통해 한국 불교음악을 부흥시키고, 차문화 발전에도 획을 그은 진감국사의 진영은 스님이 주석했던 하동 쌍계사와 상주 남장사에 봉안돼 전해오고 있다. 1863년(철종 14년)에 조성된 쌍계사의 진영은 배경이 벽면과 돗자리로 구분된 화면에 우안 7분면의 의자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꽃무늬가 있는 청색 장삼에 붉은색 가사를 걸치고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양손을 앞으로 모아 선정인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나뭇결이 선명한 통나무를 둘러친 듯 한 의자의 형태가 특이하게 보인다.

남장사의 진영은 1812년(순조 12)에 달마.나옹.청허.사명.소영.환적스님 등 7조사 진영과 함께 소장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달마스님의 진영에 쓰여 있는 화기에 따르면 청파스님의 증명 아래 금어스님, 한암스님 등에 의해 7점이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진영은 배경이 없는 전신 좌안 8분면의 의자 가부좌상으로 청회색 장삼에 홍색과 황색의 첩상 가사를 걸치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불자를 들고 왼손은 불자의 술을 잡고 있다. 이마 쪽의 머리가 여래의 나발처럼 말려있으며 곧고 힘 있는 눈매와 눈썹이 비상해 보인다. 또 당당한 체구와 수염은 스님의 위엄을 잘 표현하고 있다.

허정철 기자

[불교신문 2401호/ 2월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