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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토끼와 우담바라

 

토끼와 우담바라

전래동화와 불교는 ‘밀접한 관계


신라 선덕여왕 때 백제가 지금의 경남 합천인 신라 대야성을 쳐서 함락시킨다. 그 때 훗날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죽는데 이를 복수하고자 김춘추는 고구려로 청병(請兵)하러 갔다가 연개소문에 의해 오히려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청포(靑布) 삼백 보를 고구려의 신하 선도해(先道解)에게 뇌물로 주고 활로를 찾는데 선도해가 해결책으로 들려 준 설화가 바로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간 거북이의 이야기인 ‘구토설화(龜兎說話)’이다.

이 구토설화는 훗날 조선시대로 와서는 수궁가라는 판소리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별주부전’, ‘토생원전’, ‘토별산수록’, ‘별토록’ 등의 소설이 되었으며 개화기에는 이해조에 의해 신소설 ‘토의 간’으로, 그리고 다시 윤동주의 시 ‘간(肝)’으로 재창조되었다.

이 구토설화의 근원이 부처님의 본생담인 ‘자타카’에서 유래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옛날 용왕의 부인이 잉태를 하여 원숭이의 간을 먹고자 했으나 원숭이가 토끼처럼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한다는 ‘용원(龍猿)설화’가 그것이다. 때로는 용왕이 악어가 되기도 하고 돌고래가 되기도 하는 등 전해지는 얘기는 여러 가지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며 이러한 전승은 아시아 전역에서 쉽게 발견된다고 한다. 또한 540년경 페르시아 왕(王) ‘아누시루반’ 때에 중세 페르시아어로도 번역되었고, 다시 아라비아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영어 등으로도 번역되어 ‘아라비안나이트’ 등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의 설화 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토끼와 거북’설화는 본생담 ‘자타카’서 유래

 용원설화서 원숭이가 사는 곳은 ‘우담바라 숲’

이러한 용원설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지혜로운 원숭이가 사는 곳이 바로 우담바라 숲이라는 점이다. 3000년마다 피는 전설의 길상화인 우담바라, 산스크리트어로 ‘udumbara’를 음차하여 ‘우담파라(優曇婆羅)’, ‘우담발라(優曇鉢羅)’, 꽃 이름으로는 ‘공기화(空起花)’, ‘영서화(靈瑞花)’로도 불리는 우담바라가 설화의 배경이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담바라 숲은 더운 인도 지방에서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는 유익한 꽃으로 상서로운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고 한다. 그 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담바라가 ‘무화과’의 일종으로, 꽃이 열매 속에 있어서 쉽게 발견할 수 없기에 그 희소성으로 말미암아 3000년 만에 피는 전설의 꽃이 된 것이라고 한다. 붓다나 전륜성왕이 세상에 나올 때 핀다는 이야기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정조대왕의 저술을 모아놓은 <홍재전서(弘齋全書)> 권53에 서산대사를 기리는 사당인 ‘표충당(表忠堂)’과 ‘수충당(酬忠堂)’에 내린 글 ‘서산대사 화상당명(西山大師 像堂銘)’에 “…석장 세우고 한 소리 외치니(卓錫一喝)/ 마귀의 군졸 흩어졌고(魔軍離披)/ 하늘 맑고 달 밝은데(天晶月朗)/ 파도는 잠들고 물결도 조용하여라(波恬浪平)/ 우담바라의 꽃이(優曇鉢華)/ 동해에서 피어났네(涌現東瀛)…”라며 서산대사를 우담바라로 비유한 것에서 정조의 각별한 마음과 불교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경남 사천의 비토섬과 충남 태안의 청포대가 토끼와 거북이 전설의 원조라며 ‘별주부 마을’ 지정을 놓고 경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이미 심청전, 홍길동전, 흥부전, 춘향전 등이 소위 원조 고장 논란을 거쳐 왔던 전례가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불교와 밀접함을 정작 우리 불자들은 모르고 있는 듯 하여 몇 자 적어 보았다.

김유신 /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이사


[불교신문 2472호/ 11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