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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산을 신으로 섬기다 - 산신 이야기

 

산을 신으로 섬기다 - 산신 이야기


산(山)은 땅위의 가장 높은 곳으로 하늘과 잇닿아 있는 신성한 곳이다. 그래서 하늘의 신들은 인간계에 내려올 때 산을 통해서 내려온다. 우리 선조들은 신성한 산을 신으로 모셨으니 산신신앙이 그것이다. 오늘날 산신신앙은 사찰의 산신각과 마을의 동제(洞祭), 혹은 무속신앙의 한가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를 대표하는 것이 ‘오악숭배(五嶽崇拜)신앙’이다. 이 오악사상은 일찍이 중국에서 발달하였는데 동쪽의 태산(泰山), 서쪽의 화산(華山), 남쪽의 형산(衡山), 북쪽의 항산(恒山), 중앙의 숭산(嵩山)을 오악으로 삼았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 이미 오악개념이 성립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보면 동악으로 경주 토함산, 서악으로 계룡산, 남악으로 지리산, 북악으로 태백산, 중악으로 대구 팔공산을 꼽고 있다. 신라의 오악숭배는 고려시대에 팔관회로 절정을 이루다가 조선시대로 오면서 다소 약화되기는 했지만 유교식 제례로 형식을 바꿔서 존속하여 왔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태조임금을 도와 조선을 개국한 무학대사의 진언을 따라 동악 치악산, 서악 구월산, 남악 지리산, 북악 묘향산 혹은 비백산, 중악 계룡산을 오악으로 삼았으나 조선중기 이후 백두산 지역을 수복함에 따라 <중종실록>에서는 동악의 금강산, 서악의 묘향산, 남악의 지리산과 중악의 삼각산, 그리고 비백산 대신 백두산을 북악으로 삼았다. 이들 산에는 모두 산신령이 있다고 여겨 우리 선조들은 이 땅에 터살이 할 때부터 지금까지 신령스러운 존재로 섬겼다.

미신숭배 비난도 있으나 우리 전통 신앙관

‘풍류도 신앙’은 불교와 만나 새로운 형식


사회 일부에서는 이를 미신숭배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인 신앙관은 지구를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임을 강조한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때 그 의미가 새롭기만 하다. 단재 신채호선생이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꼽았던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시 국운융성을 기원하며 불보살님과 산천오악 신령의 가피를 비는 ‘팔성당(八聖堂)’이란 건물을 서경(평양)에 건립했는데 그 안에 모신 여덟 명의 선인(仙人)들 명호가 심상치 않아 <고려사 절요>, <동사강목> 등에서 전하는 바를 소개한다.

1)호국백두악태백선인실덕문수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 2)용위악육통존자실덕석가불(龍圍嶽六通尊者實德釋迦佛), 3)월성악천선실덕대변천신(月城嶽天仙實德大辨天神), 4)구려평양선인실덕연등불(駒麗平壤仙人實德燃燈佛), 5)구려목멱선인실덕비바시불 (駒麗木覓仙人實德毗婆尸佛), 6)송악진주거사실덕금상색보살(松嶽震主居士實德金剛索菩薩), 7)증성악신인실덕늑차천왕(甑城嶽神人實德勒叉天王), 8)두악천녀실덕부동우바이(頭嶽天女實德不動優婆夷).

서경파와 개경파가 반목했던 당시의 복잡한 정치상황이야 어찌 되었든지 일찍이 최치원이 주장한 바 있고, 근세에 이르러 최남선이 다시 한 번 언급한 바 있는 우리 고유의 사상 ‘풍류도’, 즉 ‘부루신앙’의 전통이 불교와 만나 새로운 형식의 의지처가 되었음은 물론, 오늘날의 산신신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듯 하여 가을산행이 빈번한 요즈음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김유신 / 불교문화정보연구원 이사


[불교신문 2474호/ 11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