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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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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따뜻한 정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따뜻한 정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서울의 판자촌.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상경한 타지역 사람들이 가난에 힘겹게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정부미를 하루하루 봉투로 조금씩 사다가 보리쌀에 섞어 먹는 처지였으니 다들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기 엄마들은 더운 곤욕이었습니다. 먹지 못해 젖이 안 나오는데 분유를 넉넉히 살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 판잣집 부엌에서 뭔가를 찾는 듯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집에 사는 아이 엄마는 설마 도둑인가 싶어 벌벌 떨면서 부엌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옆집 쌍둥이 엄마가 찬장을 뒤지더니 분유통을 슬그머니 꺼내는 것이 아닙니까? 순간 화를 내려던 아기 엄마는 한숨을 쉬고 모른 척했습니다. 자기도 애를 키우는 마당에, 쌍둥이를 키우는..
절실한 마음의 힘 절실한 마음의 힘 한 무명 여배우가 영화 오디션을 봤습니다. 제법 중요한 배역의 오디션이었기 때문에 많은 경쟁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장이라 불리는 영화감독과 국민배우라 불리는 선배배우 앞에서 여배우는 무척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된 여배우는 시퍼렇게 날이 선 생선회칼을 불쑥 꺼내 들고 영화 관계자들 앞에 당당히 나섰습니다. 여배우가 노리는 배역이 일식집 주방장이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디션 심사를 보던 선배배우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여배우가 들고 온 칼은 막 구입한 새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사용되면서 잘 관리된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선배배우가 칼을 어디서 구해왔냐고 묻자 여배우는 건물 1층 횟집에서..
서로 자기 돈이 아니라는 사람 서로 자기 돈이 아니라는 사람 조선 전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홍 씨라는 사람이 큰 부자가 되어 한양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다란 기와집을 사서 한양에서 살게 된 홍 씨는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대청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무너지려는 것을 보고 수리를 하였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로운 기둥을 세우기 위해 헌 기둥을 뽑아낸 자리에서 어찌 된 영문인지 은(銀) 3000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놀란 홍 씨는 급히 수소문하여 집의 이전 주인인 이 씨를 찾았습니다. 원래 대대로 부자였던 이 씨는 가세가 기울어 홍 씨에게 집을 팔고 검소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홍 씨는 이 씨를 찾아가 은전이 든 항아리를 주려고 했지만, 이 씨가 사양하면..
후손에게 전하는 선물 후손에게 전하는 선물 남에게 베푸는 일에 인색하고, 괜한 일에 트집 잡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의 남자가 길을 걷다가, 뜰에 과수 묘목을 심고 있는 노인을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 "어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과일이 열리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남자의 말에 노인은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습니다. "빨라도 30년 정도 걸리지요." 그러자 남자가 노인을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르신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 그때까지 어르신이 살아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노인은 남자의 말에 대답했습니다. "내 나이가 벌써 80을 넘겼으니 아마도 어렵겠지요." 그러자 남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먹지도 못할 과일나무를 왜 심는 겁니까? 아무 쓸모없는 일에 왜 힘을 쓰는 건지..." 노인은 잠시 일손을 놓고, 남자..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헨리 키신저, 빌리 브란트, 무아마르 알 카다피, 야세르 아라파트, 인디라 간디, 구엔 반 티우, 골다 메이어, 덩샤오핑, 줄피카르 알리 부토, 이란의 팔레비 국왕과 그의 최대 정적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 수많은 권력자의 잘못을 직설적으로 파헤치는 인터뷰로 유명한 기자입니다. 192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깨달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가치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녀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으로부터 '베트남 전쟁은 어리석은 전쟁이었다'라고 자백하게끔 하여 그가 평생을 두고 오리아나 팔라치와 인터뷰한 것을 후회..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맞벌이 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집안일을 혼자 도맡아 해야 했던 한 여자가 상담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녀는 직장생활을 하는 아빠, 엄마를 대신해 자신과 동생을 챙기고 학업을 이어 나가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칭찬을 들은 적도, 인정을 받은 기억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고, 두 분 사이도 극도로 안 좋았어요. 제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죽일 듯이 싸우다가 엄마는 몇 번 가출도 하셨고, 어쩌다가 괜찮아지면 저한테 잘해 줬지만, 항상 그때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은 절망적이면서도 필사적이었던 것 같아요." 상담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사랑받지 못할 존재 여서가 아니고, 당신이 어딘가 결함이 있는 존재 여서도 아니고, 당신이..
헌신과 노력 헌신과 노력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 그는 오스트리아 출생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로 20세기 초반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꼽히며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빈 기상곡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군인이 되어 장교로 복무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때 부상으로 전역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방황했지만, 어린 시절 배웠던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는 곧 대단한 연주자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 음악도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정말로 감동적인 연주였습니다. 만일 제가 선생님처럼 연주할 수 있다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기꺼이 포기해도 아깝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프리츠 크라..
공은 아랫사람에게 실패는 자신에게 공은 아랫사람에게 실패는 자신에게 비인간적인 흑인 노예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그리고 인간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치러진 미국 남북전쟁에서의 일입니다. 그중에 게티즈버그 전투는 3일간에 5만 1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처절하고 치열한 전투였지만 결국 북군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전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투에 앞서 북군 조지 미드 장군은 고민했습니다. 북군에게는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전투였지만 많은 병사가 전투로 인해 죽거나 다칠 것이 분명했고, 만약 전투에 패배할 경우 전쟁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조지 미드 장군에게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공격 명령과 함께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조지 미드 장군.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