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으뜸’ 부처님 지혜, 보물로 이루어진 숲속 절
보림사는 천불을 모실 수 있는 평지가람에 일주문
사천문, 석탑, 대적광전이 일직선의 축을 이루고
비로자나불을 모셔서 선종의 적손임을 자랑하고 …
이뿐만 아니라 주변 수령 300년이 넘는 무수한
비자림 사이로 자라난 차나무는 선(禪)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신라의 김언경은 보림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킴에 부족함이 없음이여! …”
장흥 가지산 보림사는 천불을 모실 수 있는 평지가람에 일주문에서 사천문, ‘삼층석탑과 석등’(국보), 대적광전이 일직선의 축을 이루고 있다.
보림사는 원래 가지사(迦智寺)로 원표대덕(元表大德)이 거처하던 곳이다. 대덕이 법력으로 정사를 도와 신라 경덕왕은 장생표주(長生標柱)를 세우게 하였다. 이후 보조체징(普照體澄, 804~880)선사가 헌안왕 4년(860) 구산선문 중 하나인 가지산문을 일으켜 선풍을 크게 떨쳤다. 선사 사후(死後) 헌강왕이 사액(賜額)을 내려 보림사라 하였다.
☞ 보조체징선사 선종대가람 가지산문 열어
보조선사창성탑비(884년)에 “달마는 당나라의 제1조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곧 도의대사(道儀大師)를 제1조로, 염거선사(廉居禪師)를 제2조로 삼고, 우리 스님(普照體澄)을 제3조로 한다”고 하여 보림사가 선종의 으뜸임을 밝혔다. 이런 상징성을 잘 나타낸 것이 ‘가지산 보림사’란 편액이 걸려 있는 일주문이다. ‘迦(가)’는 범어의 ‘kya’로 범어 ‘sakyamuni(釋迦牟尼, 석가모니)’에서 ‘가’를, ‘智(지)’는 범어 ‘jnana’로 번뇌를 끊는 지혜(智慧)에서 따 왔다. 가지산(迦智山)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머무르는 지혜의 산이란 의미이다. 보림사(寶林寺)는 보배로 이루어진 숲속의 절로 육조 혜능대사가 지은 중국의 보림사 명칭과 같다. 혜능의 선맥(禪脈)을 이은 한국의 혜능, 보조체징선사를 기리는 의미에서 보림사라 하였을 것이다.
선종대가람 가지산문의 상징성을 잘 나타낸 ‘가지산 보림사’ 편액이 걸려 있는 일주문.
일주문 안쪽에 걸려 있는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 편액 역시 구산선문을 표방하고 있다. 이 편액 끝에는 효종8년(1657)에 국가 수호사찰의 제액을 내렸고 영조2년(1726)에 시행한다는 내용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 아래 창방에는 ‘외호문(外護門)’이란 작은 편액이 걸려 있어 국가 수호사찰이었음을 알려 준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커다란 팔작 다포의 홑처마 지붕이 화려한 가운데 천장을 뚫고 나온 한 마리 청룡은 선종대가람을 지키려는 듯 편액을 향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곧장 사천문(四天門)이란 편액이 걸린 천왕문이 나온다. 사천문은 육계 6천(天) 가운데 첫 하늘, 사천왕이 있는 하늘의 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능가아발다라보경>에 “사천왕천이 있는데 이 하늘은 다섯 가지 착한 법의 인연으로 태어난다. 죄와 복을 믿고 계율을 받아 지니고, 착한 법을 듣고, 보시를 닦았으며 지혜를 배운 것이다”고 했다. 이런 인연으로 사천왕의 딸로 태어나 보림사 창건의 공덕주가 된 지리산의 성모(聖母) 선아(仙娥)의 이야기가 〈보림사사적기〉(미국 하버드대 소장)에 전한다. “방장산(지리산) 천왕의 딸인 성모 선아가 보림사 터를 닦는데 도움을 주어 별도로 작은 전각을 만들어 그의 상을 그려 걸어놓고 이름을 ‘괴화당(魁花堂)’이라 하고, 절의 옹호 신중으로 모셨다”고 했다.
<장흥읍지> 유치방 불우조(佛宇條))에는 “절에 매화당(梅花堂)이 있는데 전하기를 이 절을 처음 지었을 때 매화부인과 국사가 대시주가 되어 큰 사찰을 세웠던 까닭에 그림을 그려놓고 지금도 공양을 올린다”고 했다. ‘괴화당’은 ‘매화당으로, 선아는, 매화보살로 변하여 ’수호가람 매화보살 진영‘으로 남아 있다. 또한 ’괴화‘라는 말의 뜻은 모든 꽃의 우두머리, 으뜸을 뜻하고 있어 조선시대 매화를 꽃의 으뜸으로 생각하여 이름을 바꾼 듯하다. 이러한 의미에서인지는 몰라도 지리산의 산신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표현된다.
☞ 가장 오래된 목조 사천왕상 ‘불법수호’
〈보림사중창기〉에는 총 46채의 건물이 있었지만 대부분 6ㆍ25전쟁 때 국군의 방화로 불타버리고 천만다행으로 일주문과 사천문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 사천문 내부에는 조선 중종10년(1515)에 조성한 높이 3.7m의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목조 사천왕(보물)을 모셨다. 공통된 모습은 인자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패(頭佩)는 날아갈 듯 꼬여 있다. 천의는 불타오르고, 갑옷은 섬세하고 화려해 가람수호의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천왕의 몸속에 <월인석보>(보물), <금강경삼가해>(보물), 불교의식 등 총 227종 345권의 불교관련 서적을 500여 년 동안 고이 모셔 왔다는 사실이다. 과연 보림사 사천왕은 부처님의 법을 지킨 옹호성중으로 임무를 완수하였다.
사천문을 지나면 바로 넓은 마당에 남북으로 우뚝 선 삼층석탑(국보, 불탑)과 그 사이에 석등(국보, 장명등)이 대적광전 앞에 날렵하게 서 있다. 남북 삼층석탑은 신라 경문왕10년(870)에 초층 탑신에 사리 7과를 봉안하고 신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조성하였다. 탑의 높이는 약 5.4m로 2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지붕돌은 처마가 날렵하게 들려있어 경쾌하다. 상륜부 보륜은 남쪽 탑이 4개, 북쪽 탑이 5개로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석등(장명등) 역시 영기창(靈氣窓)을 새긴 사각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8각 아래 받침돌을 얹었다. 그 위에 기둥을 세운 후 다시 연꽃무늬가 새겨진 8각 위 받침돌을 올렸다. 불을 밝히는 8각 화사석에는 4면에 창을 내고 그 위로 넓은 지붕돌을 얹고 8각 모서리 끝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돌게 표현하였다.
보림사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 눈을 뗄 수 없는 법신 비로자나불
<대정장(大正藏)>에서는 “변조여래(비로자나불)의 몸, 형상은 밝은 달과 같다. 일체의 잘생긴 모습, 법신을 장엄했네”라 하여 비로자나불을 찬탄하였다. 이렇듯 보림사 대적광전에 봉안된 비로자나 부처님의 잘생긴 모습은 바라보는 이들이 눈길을 돌릴 수 없게 한다. 높이 2.51m 철조 비로자나 부처님(국보)의 왼쪽 팔뚝 뒷면에 양각으로 새겨진 명문에는 정왕 즉위3년(859)에 조성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법의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착의(通肩着衣)에 신체는 큰 편이나 몸에 비해 머리가 약간 큰 편이다. 머리에 촘촘히 솟아 있는 나발은 후대에 진흙으로 보수한 모습이다. 양 눈썹은 콧등으로 이어지지만 콧날은 평평하고, 두툼한 입술에 인중은 선명하게 처리되었다. 수인(手印)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모습이다.
보조선사 창성탑비(보물). 선사를 우리나라 선문의 제3조로 모시는 연유를 볼 수 있다.
특히 보조선사창성탑비에 “중생에게는 노사나불이 되고 노사나불에게는 중생이 되는 것. 두 몸이 이미 한 몸이거늘 다시 누가 부처이겠는가!” 하여 지권인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말하였다.
이처럼 보림사는 천불을 모실 수 있는 평지가람에 일주문에서 사천문, 석탑, 대적광전이 일직선의 축을 이루고 비로자나불을 모셔서 한국 선종의 적손(嫡孫)임을 자랑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주변 수령 300년이 넘는 무수한 비자림 사이로 자라난 차나무는 선(禪)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신라의 김언경(金彦卿)은 장흥 보림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지킴에 부족함이 없음이여! 베푸심이 끝이 없어라.”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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