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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유적과사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사찰] 여름휴가 때 생각나는 남해 용문사

남해바다 통째로 품은 대웅전 ‘일품'

 

남해 용문사 대웅전. 용문사의 금당으로 건물 처마와 어간 앞에는 남해 세존도에서 부처님을 따라왔다는 6마리 용이 불전을 지키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웅전 천장은 이곳이 대웅전인지 바다용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 암수 두 거북이는 서로 

등에 업고 사랑놀이를 하거나, 붉은 게와 남해 

앞바다에서 주종을 이루는 보구치는 연꽃 속에…

 

“비유컨대 법은 물과 같아서 능히 더러운 때를 

씻나니, 우물과 못과 강과 냇물과 개울과     

큰 바다가 모두 더러운 때를 씻는 것과 같으니라” 

 

우리 국민이 가장 살고 싶은 지역 가운데 한 곳인 남해 끝자락은 오래된 절 용문사(龍門寺)와 겹겹이 쌓아 올린 다락논, 은모래해수욕장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그중 해발 650m의 호구산(虎丘山) 아래 자리 잡은 용문사는 주위를 둘러싼 아름드리 소나무와 측백나무 등 상록수림으로 인해 여름이면 더 가고 싶은 절이다.

호구산이란 이름은 “진(晉)나라 고승 축도생(竺道生)이 호구산에서 돌멩이들을 제자로 삼아 모아 놓고 <열반경(涅槃經)>을 강설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돌조차 뛰어난 설법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완석점두(頑石點頭)’라는 말도 생겨났다. 용문사란 이름도 “중국 순임금 때 하우(夏禹)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해서 호구산 아래에 용문이 막힌 것을 터서 물길을 바다로 빠지게 했다”는 데서 따온 이름일 것이다. 용문사는 양평·예천·남해의 용문사가 유명한데 왕실의 후원으로 중창한 호국도량이다. 양평은 용의 머리, 예천은 허리, 남해는 꼬리에 해당하는 절이라 말한다. 조선팔도가 용의 기운을 받아 부처님의 법과 사찰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어진 이름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 가운데 큰 힘을 내는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남해 용문사에 오면 용의 기운을 받는다고 말한다.

‘사동중정’ 형태 15개 전각의 가람

남해 용문사는 663년(신라 문무왕 3)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남해 금산에 보광사(현 보리암)를 창건하고 이곳 호구산에 첨성각을 건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802년(애장왕3)에 사세를 확장하여 사격을 갖추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이끈 승군의 주둔지여서 왜적에 의해 소실되었다. 이후 1660년(조선 현종1) 백월당(白月堂) 학섬(學暹)대사가 현재의 호구산 용연(龍淵) 위쪽에 보광사를 옮겨 중창하였고 이름을 용문사라 했다. 1666년(현종7) 일향화상이 대웅전을 창건하고, 이어 봉서루, 나한전, 명부전, 첨성각, 천왕각, 동서방장, 극락전 등이 차례로 건립되어 사동중정(四棟中庭) 형태의 15여 개의 전각으로 가람을 이루었다.

“봉서루는 성암스님과 태익스님, 나한전은 보휘스님, 명부전은 설웅스님, 향적전은 인묵스님, 첨성각은 설잠스님, 천왕각은 유탁스님 등등 어려운 시기 많은 스님들의 땀방울로 불사가 이루어졌다. <용문사 창건기>에는 전각을 건립한 스님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어 요즘 말로 하면 책임건축 실명제로 소임을 다하였다. 또한 조선 숙종은 용문사를 수국사(守國寺)로 지정해 남해 앞바다를 지키는 호국도량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왕실의 축원당으로 삼았다.

여섯 마리 용이 수호하는 대웅전

대웅전 대들보 충량의 용. 부처님을 지키기 위해 남해 세존도에서부터 부처님을 따라온 것일까? 


용문사 금당인 대웅전(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겹처마에 덧서까래를 얹어 화려하다. 지붕은 건물에 비해 크고 웅장하여 전면에서 볼 때 장중한 느낌을 준다. 네 귀퉁이에는 활주로 추녀를 받치고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건물 처마와 어간 앞에는 남해 세존도에서 부처님을 따라온 6마리 용이 세존이 계시는 불전을 지키고 있어 놀랍다. 내부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목조 설법인의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 등 삼존불을 모셨다. 후불화는 1897년에 조성된 것으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하단에는 연꽃을 든 문수보살과 여의(如意)를 든 보현보살, 증장천왕과 광목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중단에는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상단에는 아라한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사슴,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들거나 학, 푸른 사자를 안고 있다. 그 위에는 광목천왕, 다문천왕, 금강역사들이 꽉 차게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 천장의 각종 물고기 문양. 남해 바다를 통째로 옮겨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물고기가 천장에 가득하다. 


대웅전 들어서면 파도소리 들리는 듯

이뿐만 아니라 남해 용문사 대웅전 천장에는 남해바다를 법당에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하다. 특히 남해 앞바다에는 ‘세존도(世尊島)’란 섬이 있는데 설화에 따르면 “옛날 부처님께서 이 섬에 계셨는데 중창불사를 위한 용문사 스님들의 간절한 기도에 감응하여 남해 앞바다 세존도에서 용문사로 자리를 옮기셨다고 한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바다에 솟구친 바위를 뚫고 용문사로 오신 까닭에 지금도 세존도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다”고 한다. 그때 부처님을 따라온 남해의 용들은 대웅전 안팎을 지키고, 물고기들은 대웅전 안까지 들어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대웅전 천장은 이곳이 대웅전인지 바다 용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암수 두 거북이는 서로 등에 업고 사랑놀이를 하거나, 붉은 게와 남해 앞바다에서 주종을 이루는 보구치는 연꽃 속에 놀며, 붉은색 참돔 암수가 나란히 연꽃 속에서 데이트를 한다. 구름 속에서 동그란 눈을 뜨고 있는 귀여운 물고기 전갱이가 있는가 하면, 바다 뱀장어는 보개(寶蓋) 앞에 진을 치고 부처님을 지키겠다는 등 여러 가지 물고기 조형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돈 들이지 않고 바다 속을 여행하니 시원한 대웅전이 바로 아쿠아리움(aquarium)이 되어 여름휴가 장소로 적격이다.

대웅전 천장에 많은 물고기가 있는 것은 경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불정삼매다라니경>에는 “갖가지로 장엄하여 부처님의 자리 밑에는 큰 바다를 그리고, 그 바다 속에는 연꽃과 물고기와 짐승들을 아주 많이 그려야 한다”고 했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 천장 속에는 별의별 물고기가 살고 있어 과연 부처님의 품은 넓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 속에 숨어 있는 물고기 찾아보는 것 또한 남해 용문사를 찾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대웅전을 참배하면 파도소리가 그냥 들릴 것 같다.

고려 초기 호분 바른 미륵보살

용화전 미륵보살상. 약 350년 전 용문사를 중창할 때 땅속에서 솟아오른 미륵보살상이다.


용화전에는 용문사에서는 제일 오래된 고려 초기 호분(胡粉)을 바른 석조 보살상이 있다. 약 350년 전 용문사를 중창할 때 땅속에서 솟아올랐다는 미륵보살님이다. 머리에는 견숙가(甄叔迦) 보석으로 만든 하늘 관(天冠)을 쓰고 결가부좌하여 자삼매(慈三昧)에 든 조용한 모습이다. <미륵상생경>에서 “도솔천관을 닦는 사람은 필경 한 하늘 사람이나 한 송이 연꽃을 보게 되리라” 하였으니 당연히 미륵보살님은 도솔천관을 닦는 불자들이 볼 수 있도록 왼손에 한 송이 연꽃을 보여주고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 ‘덕행품(德行品)’에 보면 부처님께서 대장엄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비유컨대 법은 물과 같아서 능히 더러운 때를 씻나니, 우물과 못과 강과 냇물과 개울과 큰 바다가 모두 더러운 때를 씻는 것과 같으니라. 법의 물도 그와 같아서 능히 중생의 모든 번뇌의 때를 씻느니라.”

무더운 여름, 바다나 깊은 계곡물에 몸을 담그며 자신의 몸을 씻을 때 번뇌의 때가 없어지고 구경에는 여래의 청정한 법신을 얻도록 서원한다면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