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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풍수지리

[건강아파트만들기] 지기쇠왕설

지기쇠왕설


지기쇠왕설이란 땅이 가진 생명력(地氣 또는 生氣)은 시간의 흐름과 또는 그 땅을 차지한 사람에 따라 왕성해지거나 또는 쇠약해진다는 뜻으로, 땅의 기운이 왕성할 때라면 부귀와 번영을 누리고, 땅의 기운이 쇠약할 때라면 재앙과 불행이 닥쳐온다고 보는 풍수적 견해이다.

  이 말의 기본에는 땅을 무생물적 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탄생시켜 길러내는 생명체로 보는 것이며, 생명체이기 때문에 기운이 왕성할 때와 쇠약할 때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진다. 즉, 땅의 기운은 변화하며 그 변화 중에서 지기가 왕성할 때를 선택해 살거나 또는 쇠약한 곳보다는 왕성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내포되어 있다.

  지기쇠왕설은 주로 도읍지를 정하거나 또는 천도(遷都)에 따른 명분으로 이용되었다. 한국 역사상 지기쇠왕설에 따라 도읍지를 옮기자는 주장은 먼저 고려 인종 때(1135년)의 "묘청의 난"에서 찾을 수 있다.

  묘청(妙淸)은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개성)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자, 권력의 중심을 개경에서 서경(평양)으로 옮김으로써 왕권과 서경 귀족의 세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개경의 地德은 이미 衰하였고 서경의 地德에는 王氣가 있어, 천도하면 여러 나라가 조공을 받치고 金도 항복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서경천도론"을 주장했다. 물론 기득권을 지키려는 개경 귀족 김부식 등에 의해 평정되었지만, 이 묘청의 난은 지기쇠왕설을 이용한 대표적인 정권 다툼이었다.

  두번째로 지기쇠왕설이 이용된 경우는 조선의 도읍지를 한양(서울)으로 정한 것이다. 역성혁명을 성공한 이성계(조선의 태조)는 권력기반이 약한 개성보다는 새 국가의 위용에 맞는 새 도읍지를 찾았다. 그때 "개성의 지기는 이미 쇠하였다. 개성은 신하가 임금을 폐하는 망국의 터이다."라는 도참설이 시중에 널리 퍼졌다.

  이에 명분을 얻은 태조는 새 도읍지를 물색하였고, 처음에는 신도안을 지목했다가 하륜(河崙)이 이기풍수의 핵심인 호순신의 "지리신법"의 이론을 들어 반대하자 한양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세번째의 지기쇠왕론은 광해군 때의 풍수사였던 이의신(李懿信)의 주장이다. 그는 "임진왜란과 반란이 잇따르고 사방의 산이 붉게 물듦은 한양의 지기가 쇠해진 결과이니, 도읍을 교하로 옮기십시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왕의 동의까지 얻었으나 결국 이정구와 이항복의 강력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교하천도론"은 현대에 들어 최창조 씨에 의해 다시 주장되어지고 있다. 그는 여러 책에서 교하(현재 파주시 교화면)가 통일 한국의 수도로 최적지라고 거론하고 있다. 이와같이 지기쇠왕설은 도읍지를 정하거나 또는 천도에 주로 이용된 풍수적 견해로 땅의 생명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사진: 개성 남대문에서 내려다본 개성 시가지와 송악산 (pyung.co.kr에서 이미지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