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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전 포교원장 도영스님

전 포교원장 도영스님




 ‘포교는 정성이다.’ 출가 50여 년 중 40여 년을 금산사에서 보내며 금산사 중창과 지역포교 활성화에 앞장서 온 도영스님은 7년 전 이곳 완주 송광사를 맡아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도량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마음 또한 따뜻하고 넉넉하여 스님은 법호 그대로 ‘부처님 산(金山)’ 같다.

 

 

“행복의 기준은 경제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이만큼이면 됐어’

  항상 이런 마음자세를 가져야

  만족하고 즐겁게 살 수 있어


‘포교’를 얘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스님이 있다. 도영(道永)스님이다. 제11회 포교대상 수상자로 포교원장을 역임한 스님은 지난 1980년 금산사 주지로 임명된 이래 청소년·군포교 등 각 계층별 포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논산훈련소 법당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아 법당건립을 주도한 것을 비롯해 인근 군부대 정기방문 등 군포교, 어린이포교, 파라미타 청소년협회 지부 설립, 직장불교회 설립지원 등 전북지역 포교활성화에 진력했다.

오랜 금산사 주지 소임을 통해 전국에서 가장 불교인구가 적은 전북지역에 포교의 전기를 마련하고 특히 전주시내에는 전북불교회관을 건립하여 포교의 구심점을 만들었다. 제17교구본사인 금산사 주지시절 ‘포교하지 않는 말사 주지는 주지직을 내 놓으라’고 선언할 정도로 강한 포교원력을 천명하기도 했다.

금산사 주지 외에도 중앙종회의원(3선), 총무원 교무부장, 초.재심호계위원, 포교원장 등 주요 소임을 맡아 종단 내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경실련 전북상임대표, 화엄불교대학장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불교위상 정립에도 큰 역할을 했다.

완주 송광사 주지 소임을 맡아 문화재관람료 매표소를 없애 사찰을 누구나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정신.지체 장애복지 활성화를 위해 법인운영에 깊은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 13일 주석하고 있는 송광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어느 새 칠순을 앞둔 원로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차마셔. 늙은이 사진 찍어봤자 내가 봐도 마음에 안 들어.”

포교원장 퇴임 2년3개월. 스님은 “오랜 만에 만나면 늙어가는 것을 보다 많이 느낀다”며 다담(茶談)으로 법석을 열었다.

“경전이 내용이 큰 틀로 보면 삼법인.사성제 안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사람의 모습만 보더라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잖아. 삼사십 대 때는 훤하다고 얘기하던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서는 ‘왜 그렇게 늙었느냐’고 하거든. ‘나이 칠십이 다 돼서도 안 늙으면 도둑놈이지’하고 우스갯소리로 넘기고 말지만 어느 누가 그 변화를 딱 멈추게 할 수 있겠어. 현상 세계의 모든 사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겨나서 그 모습이 변화하는 과정과 모습을 밝힌 진리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아닌가.”

스님은 포교원장 재임 5년간 조계사에서 관음재일 법문을 했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적어도 불자들이라면 설사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집착을 딱 버리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니까 몸을 바꾸는 것이니 공포를 느끼지 말라, 새로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느껴달라고. 그런데 극락세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갔다 오지 않았으니 ‘진정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은 윤회의 생사관이니까 ‘새로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말라’ 또 어디 가서라도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집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통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하면서 ‘여보게 잘 있어, 갔다가 또 올 거니까’ ‘얼마 만에 올 것이냐? 1년이면 된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죽어서 49재를 지내고 극락세계를 가든지, 어떤 분의 몸을 빌려서 다시 와야 하니 열 달을 합쳐 1년이 안되겠어요? 어른 스님들이 영결식 때 하는 얘기가 있죠? ‘극락세계에만 안주하지 말고 사바세계에 오셔서 더 많은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하는 발원을 하듯이 극락세계 또한 오래 머물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가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요, 좋은 일하고 복을 지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몸을 받아서 다시 못다 한 일, 다시 자기수행을 쌓아서 바로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생사관이고 윤회관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육체적 기능은 떨어지기 마련. 스님은 새벽예불 때 호흡과 108배만 하더라도 젊었을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며 법문을 이어갔다.

  

“파거불행(破車不行)이요, 노인불수(老人不修)라. 젊은이들한테 얘기하면 피상적으로 듣지만 지금 우리는 ‘그 때 더 열심히 할 걸’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어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원효대사의 가르침입니다. ‘망가진 수레는 굴러갈 수 없고, 늙으면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신도들에게 많이 강조하는 편입니다.”

스님은 사람도 많이 만나며 항상 미소를 띠고 있다. 그리고 신도들에게 항상 ‘긍정적 사고를 갖고 낙관적으로 살아가라’고 권한다.

“전라도 지역이 신심이 없다 보니 나는 ‘더 간절하게 포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하면 원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불자를 만들어 내는 궁(宮)’이라고 생각하고 연무대 부사관학교 등을 쫓아 다녔어요. 연무대 법당이 너무 좁아 2부로 나눠 법회를 봐야 하고 밖에서 법사 얼굴도 못 보며 법문을 듣고 그런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포교는 수행이고 수행이 포교입니다. 포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기수행을 바탕으로 행(行)으로써 실천하는 것이 포교입니다.”

스님은 5년 임기의 포교원장 소임을 마치고 2006년 겨울 조용히 백담사 무문관(無門關)에 방부를 들였다. ‘너무 밖에서 돌아 안살림이 부족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방부를 들인 12명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았다.

“요새는 승찬(僧璨)스님의 <신심명(信心銘)>을 갖고 많이 얘기합니다. 시심마(是甚) 등 역대 조사 스님들의 화두(話頭)가 많이 있지만 ‘생활 속의 화두’를 얘기합니다.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東擇)이라 단막증애(但莫增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도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고 오직 이것저것 가리키는 것을 꺼릴 뿐이니 다만 미움과 고움의 착심만 두지 않으면 탁 트여 저절로 환하게 밝아지리라.’ 16자의 짧은 글이지만 간택심을 버리라는 내용입니다.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리는 두 가지 마음, 취사선택하는 간택심을 버리고 두 번째는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증애(憎愛)심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물론 세간 사람들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좁히는 쪽으로 노력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문관을 다녀온 뒤로는 어디를 가든지 마지막에 신도들에게 화두를 주면서 ‘올 한해 미워하는 사람 갖지 말고,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좁히는 방법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왜 미워하게 되는 것인가? 미운 짓을 하니까 미운 것 아니냐. 미운 짓 하는 것은 불교를, 인연의 소중함, 인과의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미운 짓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미워하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두 번째, 사랑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을 좁혀 달라. 그것 또한 무상한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 사랑을 해야 한다. 그런 쪽으로 서로를 좁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화두가 어떤 것이 됐든 지금 여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른 일인지 그릇된 일인지를 잘 살피면 잘 살 것입니다.

  

신심불이(信心不二)요 불이신심(不二信心)라.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살았으면 합니다. 21세기 대안은 불교 밖에 없습니다. 둘이 아닌 사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불교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을 바꾸어 말하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나누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마음으로도 베푸는 길이 많이 있거든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종교, 지역, 세대, 노사가 하나 되는 삶으로 바뀌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자녀도 적게 낳는 핵가족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주의 사고가 점차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기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성장하다보니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스님은 벽에 걸어놓은 액자를 가리켰다. ‘知足常樂 能忍自安(지족상락 능인자안: 만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고 능히 참으면 편안함을 안다)’

“행복을 조건을 오복(五福)이라고도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마음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때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더 어려울 때를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이만하면 됐어’하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당에 올 수 있는 건강이 있어서 감사하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서 감사하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서 감사하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지금 우리 사회에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법문을 듣고 나서자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한겨울 추위는 어디가고 따스한 봄바람이 다가오는 듯 포근한 느낌과 함께 세심정(洗心亭)이 눈에 들어왔다.

완주=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494호/ 1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