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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원로의원 월서스님

원로의원 월서스님

사진설명 :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참선” 월서스님은 은사 금오스님의 가르침이 곧 제자들에게 전할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금오선수행연구원’을 설립, 지난 12월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올해는 반드시 ‘마음의 소’를 찾으세요”

                   

  지금은 ‘소 등에 앉아 소를 찾는 격’

  좀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뜻을 크게 품고 노력하면 희망 있어

  

월서스님은 불교정화운동의 주역중의 한 분인 금오(金烏)스님 상좌다. 젊을 적 태백산 동암에서는 삼동결제에 들기도 했고,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구들장을 파헤치겠다는 사형 월산스님의 ‘위협’에도 아랑곳 않고 용맹정진에 들어 마침내 수마(睡魔)를 이겨내기도 했다. 청정비구승단을 지켜내기 위한 정화(淨化)의 기치가 올랐을 때는 스승을 따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새로운 종단을 만들어갈 즈음 종단의 부름을 받아 행정 소임 등을 맡게 됐다. 중앙종회의원(6선), 총무부장 등을 지냈으며 1990년 중앙종회의장 소임을 마친 후에는 해인사 봉암사 등의 선원을 다니며 다시 화두 참구에 들었다. 초발심 시절 은사스님에게서 배운 가르침대로 따른 것이다. 호계원장을 두 차례 맡아 종단의 질서를 바로잡고 계율을 확립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으며 2007년 4월 원로의원에 선출됐다.

지난 7일 서울 정릉 봉국사에서 만난 천호 월서(千湖 月)스님은 기축년(己丑年) 첫 지상법석(紙上法席)에 올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소를 찾기 위해 꾸준히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말그대로 송구영신(送舊迎新)입니다. 묵은 것은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지만 미국 발(發) 금융위기로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가 위축돼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만 생각해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습니다.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목표가 뚜렷하고 의지만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스님은 준비해 두었던 신년 휘호(揮毫) 두 개를 꺼내 들었다.

志在千里(지재천리)

露積成海(노적성해)

“뜻은 원대하게 가져라. 천리를 내다 볼 정도로 큰 뜻을 품으면 어떤 난관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허황된 꿈을 갖고 급하게 서두르면 안됩니다. 한 방울 한 방울의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침 올해가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입니다. 소처럼 정직하고 우직하게 노력하면 개인적 고뇌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적 고난도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초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처음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그 안에 이미 깨달음이 성취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며 처음 보리심을 내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처음 그 마음 끝까지 유지하며 정진하면 정각(正覺)을 이룬다고 했거든요. 처음 입산출가했을 때의 신심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단단하기 그지없습니다. 목탁을 치며 기도를 해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릅니다. 일주일을 목탁 치며 기도하다 잠시 졸아 목탁을 떨어뜨려도 그게 즐거운 겁니다. 고단한 줄 모르는 그 마음이 초심(初心)입니다.”

스님은 잠시 회상에 잠기는듯하더니 은사 금오(金烏)스님을 떠올렸다. 오늘날 월서스님을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스님은 20살에 출가해 올해 72살. 53년을 올곧게 살아왔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지만 가혹하리만큼 혹독하게 하셨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한밤중에도 불러내 일을 하게 했어요. 교훈은 항상 ‘계율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하고 삼보정재를 지키라’는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우리 (금오)스님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참선(參禪)입니다. 첫째도 참선이요, 둘째도 참선이요, 셋째도 참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우리 우리스님이고 우리문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직 참선해야 한다 이거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스님은 지금 전국 100여개가 넘는 선원에서 2500여명의 스님들이 정진하는 것을 보면 환희심을 느낀다고 했다. 당대 선지식들과 불교정화(佛敎淨化)를 발의하여 온 몸을 바치는 가운데도 ‘오직 참선’만을 강조했던 은사가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스님은 다시 올해가 소띠 해인인 것을 상기시키며 ‘심우도’를 이야기를 꺼냈다.

사찰의 법당 안팎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심우도(尋牛圖)는 선(禪)의 수행단계를 소와 동자(童子)에 비유하여 그린 그림으로, 그 단계를 열 폭으로 묘사하고 있어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스님은 곽암(廓庵)선사의 심우도를 중심으로 삼아 법문을 이어갔다.

심우도는 본래의 근본 마음자리 찾는 것을 소 찾는 데 비유한 것으로, 그림 속의 산천은 대우주요 소는 마음이요 화두다. 각각의 그림에는 심우(尋牛)-견적(見跡)-견우(見牛)-득우(得牛)-목우(牧牛)-기우귀가(騎牛歸家)-망우존인(忘牛存人)-인우구망(人牛俱忘)-반본환원(返本還源)-입전수수(入廛垂手)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첫째 심우(尋牛). 행자로 절에 들어온 것은 소를 찾으러 온 거라. 동자가 고삐를 손에 들고 산 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지. 이는 처음 발심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써 공부에 임하는 것을 상징화 한 것입니다. 그 다음 견적(見跡). 소를 찾으려고 애를 쓰다 발자국을 봤단 말이지. 몇 년 순수한 마음으로 정진하다 보니 ‘아 수행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 해탈하고 견성(見性)할 수 있구나. 이게 수행과정이구나’ 하는 것을 안단 말입니다. 그 다음이 견우(見牛)라. 소를 찾은 거지. 어렵게 번뇌망상을 떨어뜨리고 눈이 조금 뜨인 거야. 그러니 더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 아니겠어요? 이때가 되면 확신이 섭니다.

그 다음이 득우(得牛)라. 소의 고삐를 잡아버렸어.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야. 소 곁으로 다가가서 보면, 검은 색의 그 소는 거칠기가 짝이 없어. 잡으려고 하기 전에 슬금슬금 도망 치고, 때로는 사납게 대들기까지 한단 말이야. 그러나 계속 소를 따라다녀서 서로 낯을 익히고 나면, 그 사납던 소가 풀을 뜯어주면 먹기도 하고 몸을 문질러 주면 좋다고 가만히 있게 돼. 바로 이때가 기회입니다. 준비한 고삐를 소의 코에 꿰어 영영 달아나지 못하도록 말뚝에 묶는 것입니다. 앉아서 참선하는데 번뇌망상이 치올라오잖아. 한 30분 참선하는 데 처음 1분만 제대로 정(定)에 들어도 제대로 나간다고 하잖아. 그런데 어떤 때는 계속해서 망상이 쳐들어오다가 화두가 들리기도 하지. 방심하면 안됩니다. 다겁생에 쌓인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으로 인해 오욕락(五欲樂)이 살아나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요.

이 경지를 초견성(初見性)이라고 하는데, 땅 속에서 아직 제련되지 않은 금돌을 막 찾아낸 상태라고 많이 표현합니다.

그 다음이 목우(牧牛). 소를 타고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거야. 선(禪)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지. 그 까닭은 유순하게 길들여지기 전에 달아나버리면 그 소를 다시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지. 그리고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여기까지만 해도 상당한 거야.

그 다음 망우존인(忘牛存人)이라. 집에 돌아와 보니 타고 온 소가 온데간데없고 자기만 남아있어. 소를 그렇게 애써서 길들여 집에 까지 타고 왔는데 소는 없고 사람만 있는 거야. 소는 마지막 목적지인 근본 마음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니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 뗏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교종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

이제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지. 무아(無我). 소도 사람도 없어. 텅 빈 일원상(一圓相)만을 그려 놓았지. 이것이 바로 주(主)와 객(客), 나와 남이 모두 사라진 진정한 공(空)의 도리를 나타낸 것이지. 그건 모르지….”

옛 체험이 떠올라서였을까? 스님의 목소리는 더 힘차고 맑아졌다.

“참선한다고 앉아있으면 환희심이 나. 지금도 전국 선원에서 그 맛을 보고 있는 스님들이 있어요. 그 때는 이미 이 몸이 없어요. ‘공(空)’하고 똑같아. 누가 흔들어도 모를 정도야. 대단한 경지거든. 그 다음이 반본환원(返本還源). 텅 빈 원상 속에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 본래 근원으로 돌아간 것이지. 이 단계를 ‘대오(大悟)’라고 표현하지. 깨달았으면 회향해야지. 자리이타(自利利他)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이 입전수수(入廛垂手).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줄 복덕과 지혜를 담은 포대지,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제도에 있음을 상징화시킨 것입니다.”

스님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모두가 맑고 밝은 자성(自性)자리를 갖고 있는 데 그것을 알지 못해 중생으로 힘겹게 산다는 것이다.

“항상 부처님과 동정(動靜)을 같이 하면서도 자신이 부처님인줄 모르고 있는 것과 같은 거 예요. 청정법신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으면서도 청정법신인줄 모르고 있단 말이에요.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可笑騎牛子 騎牛更覓牛(가히 우습도다. 소를 탄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스님은 어느 새 소요태능 선사와 하나가 되어 기축년엔 모든 사람이 동체대비 마음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마음의 소를 찾는 해야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가가 어려울 때는 특히 불가(佛家)에서는 국가나 사회에 이익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 전미개오(轉迷開悟)하여 광도중생(廣度衆生)하는 길입니다.” 

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492호/ 1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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