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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선지식] 101. 자운성우

 

101. 자운성우

 
 
청정계율을 지키며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고, 수많은 도제를 배출한 자운성우(慈雲盛祐, 1911~1992)스님.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출가한 스님 가운데 자운스님에게 계를 받지 않은 사례가 드물 정도로 한국불교 계맥(戒脈)의 중흥조이다. 자운스님의 수행일화를 오랫동안 시봉한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스님의 회고와 <한국고승비문총집>에 실려 있는 비문을 참고해 정리했다.
 
 
“계율 스승으로 삼아야 진정한 대자유 성취”
 
 
청정계율 지키며 한국불교 중흥 이뤄
 
율장 연찬 통해 율맥 再興 초석 마련
 
 
○… 용성(龍城)스님에게 법맥을 전수받은 후에도 자운스님은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정진에 몰두했다. 1939년 4월15일부터 100일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정진한 자운스님은 “조국해방을 이루고,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불교의 빛나는 전통을 중흥시키겠다”는 발원을 했다. 당시 스님은 하루에 20시간씩 100일간 문수기도를 했다. 99일째 되던 날 꿈에 문수보살이 청사자(靑獅子)를 타고 나타나 “선재라 성우(盛祐)여. 마땅히 이 나라 불교의 승강(僧綱)을 회복토록 정진하라”면서 계척(戒尺)을 전해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 1940년대 초반 자운스님은 경성(지금의 서울) 대각사에 주석하면서 율장(律藏)을 깊이 연찬했다. 삼복더위에도 두꺼운 장삼(長衫)을 벗지 않고, 선풍기조차 변변하게 없는 도서관에서 계율 관련 자료를 찾아 탐독(耽讀)했다. 이때 <만속장경(卍續藏經)>에 실려 있는 ‘오부율장(五部律藏)’과 그 주소(註疏)를 직접 옮겨 적는 등 방대한 양의 율장(律藏)을 살폈다. 훗날 스님이 한국불교의 율맥(律脈)을 재흥(再興)하는 튼튼한 초석을 놓은 배경에는 이 같은 숨은 노력이 있었다.
 
<사진>한국불교 율맥의 증흥조 자운스님.
 
○… 자운스님의 평소 생활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특히 세수 50이 되는 해부터는 매일 아미타불 10만념(念), 아미타경 48편(遍), 아미타 예경 1080배, 문수 예찬 108배 등의 정진을 했다. 어기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매월 음력 보름(15일)에는 방생(放生)을 했다. 그리고 계율에 따라 갈아입을 옷 외에는 의복을 단 한 벌도 두지 않았고, 비시식계(非時食戒)를 지켜 오후불식을 준수했다.
 
○ …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스님은 자운스님에 대해 “철저한 분이셨고, 그 어떤 것도 소홀하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수계식 행사가 있는 날이면, 그 전날 밤을 새워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자운스님이 통도사에 주석했을 당시의 일이다. 세수 46세가 된 자운스님이 <화엄경>을 읽고 있었다. 혜총스님이 “스님, 화엄경을 왜 또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이미 오래전에 읽었을 <화엄경>을 다시 보고 있으니, 출가한지 3년밖에 안된 시자 혜총스님이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자운스님이 답했다. “그때 배우던 화엄경하고 지금 보는 것이 틀리다.” 혜총스님은 “부처님이 설하신 것인데 틀릴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틀린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라고 다시 질문했다. 자운스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은 후 답했다. “너도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당시 일을 회고하면서 혜총스님은 “지극히 평범한 평점심을 보여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 선.교.율에 깊은 식견을 갖춘 자운스님은 외전(外典)도 자주 보았다. 혜총스님의 기억에 따르면 <수호지> <삼국지> 등 중국서적을 원전(原典) 그대로 읽는 자운스님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한다. 혜총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외전을, 그것도 원전으로 읽으십니까.” 자운스님이 답했다. “세속의 지혜가 이 속에 다 들어 있구나.”
 
○… 1960년대 초에 자운스님이 해인사 주지 소임을 보고 있을 무렵, 법정스님이 한주로 머물고 있었다. 자운스님은 주지실 옆 시자 방 옆에 법정스님의 방을 내 주었다. 당시 법정스님은 대중과 어울리기 보다는 당신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법정스님을 자운스님은 각별하게 대해 주었다. 시봉하던 혜총스님이 자운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대중과 잘 어울리지 않는 법정스님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챙기고 예뻐하십니까.” 자운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그 스님이 중노릇을 잘하는 거야, 너의 눈에는 잘못하는 것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아. 나중에 종단을 위해서 그리고 부처님 은혜를 톡톡히 갚을 분이고, 한국불교를 빛낼 분이다. 그 스님을 잘 모셔라.” 당시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혜총스님은 자운스님의 말씀에 따라 법정스님을 잘 모셨고, 가까워졌다. 혜총스님은 “법정스님이 자운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면서 “법정스님의 생활이 자운스님의 생활 그대로”라고 회고했다. 혜총스님은 “법정스님이 일생 동안 자운스님을 가장 존경했다”며 “법정스님의 글에도 그 같은 사연이 나온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이 유일하게 추천사를 쓴 책이 혜총스님의 저서인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인 것도 이같은 인연에 따른 것이다.
 
○… 혜총스님은 “종단의 백년대계는 율이 아니면 끌어갈 수 없다고 자운 큰스님께서는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자운스님은 “계로 인해 수행이 나오고, 계에 의해 정견이 나오고, 계에 의해 선이 나오는 것이다. 계가 없으면 모든 것은 다 끊어지는 것”이라며 청정하게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자운스님이 인도네시아 불교성지인 보로부드르를 순례했을 당시 모습. 사진제공=포교원장 혜총스님
 
 
 
 
김포공항에서 외국 스님들의 방한을 환영하는 자운스님(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청담스님과 구산스님의 모습도 보인다.
 
 
 
 
■ 행장
 
해인사서 출가, 용성스님 법맥 계승
 
출재가자 포함 수계제자 10만 여명
 
1911년 3월3일(음력)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에서 부친 김자옥(金玆玉) 선생과 모친 인동장씨(仁同張氏)의 5남(男)으로 출생했다. 본관은 경주.
 
오대산에서 탁발 나온 혜운(慧雲)스님을 만나 불법(佛法)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합천 해인사에서 혜운스님을 은사로 불문(佛門)에 들었다. 이때가 1927년이다. 스님은 남전(南泉)스님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사미계를 받았고, 은사 스님을 시봉하며 1934년 부산 범어사 강원 대교과를 마쳤다. 1934년 범어사에서 일봉(一鳳)스님에게 보살계와 비구계를 수지한 후 해인사 선원에서 수선 안거를 한 이후 제방에서 화두를 참구했다. 특히 1935년부터 울진 불영사에서 결사(結社)를 하며 용맹 정진했다.
 
<사진>한국을 방문한 외국 스님과 함께 한 자운스님(앞줄 가운데). 혜총스님(뒷줄 왼쪽에서 첫번째)과 세민스님(두번째)도 보인다.
 
1938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용성(龍城)스님을 친견한 후 더욱 탁마(琢磨)에 열중했다. 수행의 깊이를 인정한 용성스님은 자운스님을 법제자로 받아들이고 전법게와 의발을 전했다. 교(敎).선(禪)을 두루 익힌 스님은 이후 율(律)에 관심을 가졌다. 1940년대 초반 서울 대각사에서 머물며 율장을 깊이 공부했으며, 1948년에는 문경 봉암사에서 보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했다. 이때부터 ‘천화율원(天華律院) 감로계단(甘露戒壇)’을 설립하고 율문(律文)을 강의했다. 또한 스님은 <사미율의> <사미니율의> <범망경> <비구계본> <비구니계본> 등을 한문본 2만5000권과 한글본 4만8000권을 간행했다. 이밖에도 <무량수경> <정토삼부경> <아미타경> 등을 운허(雲虛)스님 번역으로 간행한 것도 10만부에 달한다. 스님은 단일계단이 설립되기 이전인 1980년까지 해인사와 통도사 금강계단의 전계사로 비구 876명, 비구니 953명, 사미 207명, 사미나 212명 등 2248명에게 계를 설했다. 단일계단 설립 후인 1982년부터 8년간 1076명의 수계자(스님)를 배출했다. 수계제자가 10만여 명에 이른다.
 
이후 스님은 해인사 주지(1955년), 해인학원 이사장(1956년), 해인사 금강계단 전계대화상(1956년), 범어사 주지(1967년), 조계종 총무원장(1976년), 동국역경원장(1979년) 등의 소임을 맡아 헌신했다. 스님은 1992년 2월7일(양력)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했다. 세수 82세, 법납 65세. 장례는 2월13일 해인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상좌는 보경(寶瓊).지관(智冠).현경(玄鏡).보일(寶一).정원(淨願).원묵(圓).해은(海恩).도근(道根).상공(相空)스님이 있다.
 
 
 
■ 자운스님 어록
 
“권속들이 모여 호법(護法)이 아닌 이권으로 파벌을 짓는 일에는 절대로 관여하지 말고,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지 등 외호직(外護職)은 사양하라.”
 
“수행과 함께 비전(悲田)에 속하는 사회복지에도 전력(全力)하라.”
 
“밖으로는 우리와 함께 살며 고난 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사랑해 보고, 그들의 고통이 남의 고난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것이라는 마음을 갖고 그들의 고난을 덜어주기 위해 한 층 더 힘쓸 수 있는 다짐을 해두어야겠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이와 같이 근기와 인연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 같이 소중히 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허물을 뉘우치되 계율을 스승삼아 앞으로 지을 허물을 경계하여 짓지 않는 지혜인이 되어야 진정한 대자유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신문 2667호/ 10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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