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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선지식] 98. 명허동근

 

98. 명허동근

 
참선 수행의 공덕을 강조하면서 당신 스스로도 오직 화두 참구에 몰두했던 명허동근(明虛東根, 1897~1970)스님. 호랑이 같은 기상으로 후학에게 따끔한 경책을 주었던 스님은 특히 시주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평생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했다. 명허스님의 수행일화를 정리했다.
 
 
  
 
“참선공부는 서두르거나 게으름 피우면 안돼”
 
 
   수행생활 어긋나면 ‘호랑이’ 같이 경책
 
 “부처님과 시주 은혜 잊지 말고 정진해야”
 
 
○… 명허스님은 엄했다. 작은 잘못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반드시 경책을 하고 넘어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호랑이 스님’이었다. 명허스님의 상호도 호랑이와 비슷했다. 때문에 명허스님이 한번 화를 내면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더구나 화를 낸 이유가 ‘스님답게 살아야 한다’는데 있었기에 더욱 말리지 못했다. 명허스님이 마음에 두고 있던 ‘스님답게 사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과 불은(佛恩).시은(施恩)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를 어기면 스님답지 못하다는 것이 명허스님의 지론이었다.
 
<사진>1968년 진주 호국사에서 카메라 앞에 선 명허스님.
 
○… 1960년대. 절집은 물론이고 세속에도 세탁기가 없었다. 모두 손빨래로 세탁을 해야 했다. 지금처럼 세탁용 세제가 풍부했던 것도 아니다. 거품도 잘 일지 않는 빨래비누를 벅벅 문질러 빨래를 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제자가 빨래를 한 후 세숫대야에 남은 거품을 아무 생각 없이 쏟아 버렸다. 그때 갑자기 머리를 내려치는 작대기에 눈에서 별이 쏟아졌다. 아픈 머리를 매만지며 돌아보았다. 작대기를 내리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명허스님. “네 이눔. 시주 은혜가 무서운 줄 알아야지. 어디서 비누거품을 함부로 버리느냐.” 억울한 마음에 대꾸를 했다. “스님, 빨래도 다 끝났고, 이제는 거품이 소용없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대 더 맞았다. “네 이눔. 거품을 버리지 말고 두었다가, 속옷을 빨 때 사용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걸레를 빨 때 사용해도 되잖어.”
 
○… 일면스님이 명허스님을 모시고 해인사에서 행자생활을 할 때였다. 한번은 명허스님이 300원을 주고, 가야시장에 심부름을 다녀오라고 했다. 바늘도 사고 실도 사고, 심부름을 마치고 보니, 10원이 남았다. 그때 눈깔사탕이 먹고 싶었다. 사오라고 한 물건도 다 샀고, 10원도 남았으니, 용기를 내어 눈깔사탕을 사 먹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심부름을 다녀왔다고 은사스님에게 말씀을 드렸다. 한참을 생각하던 은사스님이 물었다. “남은 돈으로 무엇을 했는고?” “…” “말해보거라.” “…” “말해 보라니까.” “…, 네 스님, 사탕하나 사 먹었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졌다. 눈물이 쏙 나오도록 혼이 났다. “네 이눔. 중이 밥 먹으면 됐지, 사탕을 사먹어. 너는 중노릇 할 자격이 없어.” 한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경책을 들어야 했다. “니, 중노릇 하려면 오늘 일 참회하고, 3000배를 해라. 그렇지 않으면 마을로 돌아가라.” 제자는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밤새도록 절을 했다.
 
○… 마냥 엄하지만은 않았다. 하루는 해인사 공양간에서 채공(菜供) 소임을 보는 스님이 칼에 손을 베었다. 손가락에 붕대를 하고 있는 채공을 본 스님이 불러 세웠다. “손가락은 왜 그 모양이여.” “네, 스님 공양간에서 반찬을 만들다 베었습니다.” “쯧쯧… 조심해야지. 약을 사 발라야지. 그냥 두면 되겄어.” 스님은 꼬깃꼬깃 감춰둔 용돈을 꺼내 채공에게 건넸다. 경책을 할 때는 한 없이 무서운 스님이었지만, 아랫사람을 배려할 때는 끝없이 부드러웠다.
 
○… “여기가 빠고다(파고다, 지금의 탑골공원)인 줄 알어?” 1960년대 스님이 해인사에 주석할 무렵의 일이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해인사 도량에 들어온 젊은 아가씨는 명허스님의 불호령에 깜짝 놀랐다. “여기는 놀이터가 아니야. 부처님 모신 도량인줄 알아야지.” 호랑이 처럼 생긴 스님이 주장자를 휘두르며 야단을 치자, 젊은 아가씨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스님은 또 하나의 비책(秘策)을 사용했다. 아가씨 뒤를 따라 다니며 하이힐 때문에 생긴 구멍을 일일이 메웠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해인사 경내를 다니는 모습을 발견하면 또 다시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기가 자네들 데이트 하는 곳인 줄 알아? 어서 손 놓지 못해.”
 
○… 시주은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명허스님의 뜻이었다. 대중목욕탕의 수도꼭지도 틈만 나면 잠갔다. 수돗물을 과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하면 못쓰지”라면서 당신이 직접 잠갔다. 초를 담은 양초상자도 버리지 않고 모았다. 시간이 생기면 양초상자를 네모나게 자르고, 두꺼운 것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는 또 다시 손으로 비벼 부드럽게 만들었다. 마치 화장지처럼 부드러워진 그 종이를 스님은 해우소에서 사용했을 정도였다. 시은의 중요성을 강조한 스님의 육성이다. “시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줏물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다루면 부처님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 시은에 보답하려면 열심히 수행 정진해야 한다.”
 
○… 명허스님이 특히 강조한 수행방법은 ‘참선’이었다. 제자들에게도 사판(事判, 행정업무) 소임은 맡지 말고, 오직 이판(理判, 참선정진)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출가자가 공부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 너희들은 선방에 가서 참선 공부에 전념해라.” 당신 스스로도 참선 정진을 생활화 했다. 결제기간은 물론 해제기간에도 오직 참선에 몰두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아침공양 시간 전까지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낮에도 대중을 물리치고, 화두를 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진>1970년 11월 해인총림장으로 거행된 영결식이 끝난 후 다비장으로 이운되는 명허스님의 장례행렬.
 
○… 스님의 성품은 강직했다.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다. 노구를 이끌고 바깥나들이를 하다가 버스라도 탈일이 있으면, 상좌들의 부축을 거부했다. “이눔. 너 먼저 올라 타거라.”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상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마다했던 것이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 명허스님 어록
 
“참선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한다. 너무 성급하게 무엇을 이루려고 하면 안 된다. 탈이 난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것을 너무 늦추어도 안 된다. 늦추면 퇴보(退步)하게 되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공부해라.”
 
“언제 어디서나 화두를 놓지 마라. 출가수행자는 잠을 잘 때나 울력을 할 때나 언제든 화두를 놓아서는 안 된다.”
 
“시줏밥을 축내고, 시주 은혜를 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내생에 축생계에 빠져 도(道)를 구하기 어렵다.”
 
“부처님 가르침인 불법(佛法)과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이생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주지 소임을 맡았거든 주지 노릇을 잘 해야 한다. 잘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 과보를 받는다. 그러니 열심히 주지 소임을 보고 대중을 외호하라.”
 
 
 
■ 행장
 
풍곡스님 문하로 출가
 
제방 선원에서 ‘정진’
  
1897년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1912년 불가에 입문했다. 은사는 풍곡신원(楓谷信元) 스님. 1900년대 풍곡스님은 양평 용문사에 주석하고 있었다.
 
출가후 명허스님은 참선 정진에 전념했다. 금강산 마하연 선원을 비롯해 덕숭산 정혜사, 부산 범어사, 합천 해인사 등 전국 각지의 선원에서 화두를 들었다.
 
해인사 선원에서 오래 정진한 스님은 후학들에게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도 구하고, 남도 구하라”고 당부했다. 1960년대 해인사에서 공부한 스님 가운데 명허스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사진>명허스님이 생전에 사용하던 목탁과 요령.
 
오직 참선 수행의 외길을 묵묵히 걸은 명허스님은 1970년 11월20일(음력) 오전11시 해인총림 해인사 홍제암에서 조용히 원적에 들었다. 장례는 3일장으로 엄수됐으며, 다비를 마친 스님의 법구는 생전의 유지를 받들어 가야산에 산골(散骨)했다. 상좌로는 석옹.태정.종학.일면.현선.태공스님이 있다. 지난 2008년 일면스님을 비롯한 제자들이 남양주 불암사에 부도를 모셨다.
 
 
[불교신문 2638호/ 7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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