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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와법문

[선지식] 73. 진호석연

 

73. 진호석연

 
 
근대 역경불사(譯經佛事)의 선구자로 불교의식 체계화의 단초를 놓은 진호석연(震湖錫淵, 1880~1965) 스님. 지금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석문의범(釋門儀範)>을 비롯한 각종 불서(佛書)를 펴낸 진호스님은 대강백으로 명성을 떨쳤다. 진호스님의 생애와 업적을 일제강점기 발간된 <불교>와 해방 후 <대한불교(지금의 불교신문)>를 참고하여 정리했다.
 
 
 
근대 역경불사의 선구자…불교의식 집대성
          
            
  ‘석문의범’ ‘신편 팔상록’ 등 집필 다수
 
   용문사 · 고운사 · 백양사 등 강주 역임
 
○…조선 중기 이후 불교계에는 큰절에서 발간한 의식집과 염불집이 70여권에 이르렀다. 절마다 의식 내용이 다르다 보니 통일성을 기하지 못했다. 지역과 사찰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장점도 있었지만, 의식과 염불의 본래 내용은 물론 발음이 서로 다른 폐단도 생겼다. 진호스님은 이 같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조선의 스님과 불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의식집을 만들었다. 1935년 10월 집대성한 <석문의범>으로 지금도 대부분의 사찰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불교의식집이다.
 
○…<석문의범>은 단순히 불교의식과 염불만 수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좌선의식, 수계의식, 계문(戒文), 방함록과 전국 사찰의 현황을 기록한 조선사찰일람표가 이 책에 들어있다. 때문에 조선 중기 이후 조선불교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밖에도 스님들이 법회나 결혼식에 참고가 될 의식도 게재함으로써 시대의 변화를 선도했다. 그리고 참선곡, 회심곡, 찬불가, 염불가 등을 함께 실었다는 사실도 주목받을 만하다. “둥글고 또한 밝은 빛은 우주를 싸고…”로 시작되는 찬불가도 <석문의범>에 실려 있다. 찬불가는 조학유 스님이 작사한 것이다. 상.하 2단으로 편집하여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민초들도 부처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사진>노년의 진호스님. 출처=1994년 발행 〈봉선사〉
 
○…한암스님의 요청으로 오대산 상원사의 강주 소임을 맡게 되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밤늦게 상원사에 도착했다. 낯선 스님을 맞이한 상원사의 한 스님이 얄궂게 대했다. 방청소를 시키고, 발 씻을 물을 떠오라는 등 허드렛 일을 시켰다. 새로 온 강주인줄 모르고, 그저 지나는 길에 하룻밤 묵어가는 객(客)스님으로 알았던 것이다. 예의에 어긋난 처사에도 진호스님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묵묵부답하며 그 스님이 시킨 일을 다 마쳤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예불이 끝난 후에 한암스님이 대중에게 새 강주 스님이라고 인사를 시키자, 대중 스님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하심(下心)하는 강주 스님의 강의를 학인들이 열심히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권위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임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진호스님은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당신이 직접 소금장수와 등유(燈油)장수를 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 반드시 필요한 소금 같은 수행자가 되겠다는 뜻에서 서른 살이 넘어 소금장수로 나섰다. 그리고 어둠을 물리치는 등불처럼 정진을 하겠다는 의미로 마흔 살이 넘어서는 등유장수를 하기도 했다.
 
○…“용문사에서 강의를 들은 이력이 없으면 직지사 주지는 꿈도 꾸지 말라.”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까지 경북 일원에 돌던 이야기다. 예천 용문사는 진호스님과 관응(觀應, 1910~2004)스님이 강주로 있으면서 제자들을 지도하던 도량이다. 두 분의 가르침에 감화 받은 후학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이다. 또한 근대 한국불교학의 초석을, 놓은 권상로(權相老)와 함께 ‘양찬(兩讚)’이 가는 곳에는 학인들이 머리를 들지 못했다’고 한다. 권상로는 몽찬(夢讚), 진호스님은 석찬(錫讚)이기에 ‘양찬’으로 불렸던 것이다. 그 만큼 진호스님의 학식이 깊었음을 보여준다.
 
<사진>진호스님이 펴낸 ‘석문의범’.
 
○…일제강점기 양주(지금은 남양주) 봉선사 주지 월초(月初, 1858~1934)스님이 1927년 어느 날 진호스님을 찾았다. 한학(漢學)은 물론 내전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던 진호스님은 사중 안팎으로 명망이 높았다. 당시 진호스님은 봉선사 강주 소임을 보고 있었다. 월초스님은 진호스님에게 봉선사 본말사의 사료를 세밀히 조사하고 검토하여 ‘본말사지(本末寺志)’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에 진호스님은 봉선사는 물론 회암사, 흥국사, 불암사 등 24개에 이르는 사찰을 직접 답사하여 <봉선본말사지>를 편찬했다. 당시 월초스님은 진호스님에게 “당분간 강원의 강의를 중단하더라도 사지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 진호스님의 한시
 
1929년 1월 장성 백양사를 방문한 진호스님은 일주문 입구에 있는 쌍계루(雙溪樓)의 절경을 보고 ‘차백양쌍계루제(次白羊雙溪樓題)’라는 제목으로 한시를 지었다. 진호스님의 이 시는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불교> 55호에 실려 있다. 한글풀이는 제24교구본사 선운사 승가대학장 법광스님이 했다.
 
舊來南國幾高僧(구래남국기고승)
別界樓臺亦有能(별계루대역유능)
境勝當年淸建(경승당년청수건)
世平今日錦師增(세평금일금사증)
祥雲護塔峯常靜(상운호탑봉상정)
皓月籠軒水自澄(호월농헌수자징)
安得觀音千隻乎(안득관음천척호)
提携多士共擎登(제휴다사공경등)
 
“예부터 남국에 몇몇 고승있다 하더니 /
이상세계 누대(누각과 정자)에나 있을 법한 일이로다. /
경치 빼어난 곳 금년에 우뚝 세우니 /
세상 사람들 오늘에야 뛰어난 스승들 만났다 하네. /
상서로운 구름 탑을 보호한 듯 에워싸고 산봉우리 늘 고요하며 /
밝은 달 난간을 휘감아 물은 절로 맑노니 /
이 어찌 관음보살 일천(一千) 화현 아닐손가. /
다함께 힘모아 떠받든 공덕이노라.”
 
 
 
 
■ 행장
 
 
1880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공부했으며, 16세에 예천 용문사로 입산했다. 용문사에서 불경을 공부하다 발심하여 이듬해인 1896년 신일(信一)스님의 제자로 출가했다.
 
寺誌 여러 편 편찬
 
사회사업에도 관심
 
예천 용문사 강원에서 사교와 사집을 비롯한 전 과정을 두루 마쳤다. 총명함이 뛰어나 10년 가까이 수학하며 내전(內典) 전체를 공부했다. 이후 예천 용문사, 김천 김룡사, 문경 대승사, 의성 고운사, 양주 봉선사, 장성 백양사 등의 사찰에서 20여 년간 후학들을 지도했다.
 
<사진>진호스님의 출가도량인 예천 용문사.
 
경전 연찬은 물론 사회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다. 30대에는 소금장수를 하며 수행과 포교를 겸했고, 40대에는 등유장수를 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불교의식 체계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1929년 상경하면서 부터다. 경성(지금의 서울) 서대문에 만상회(卍商會)라는 가게를 열어 불교서적의 번역과 출판은 물론 보급에도 힘썼다. 이 시절 <초발심자경문> <서장> <선요> <도서> <절요> 등 강원 교재를 펴냈다. 또한 <석문의범> <불자필람> <석문가곡> <다비문> 등의 의식집을 만들어, 전국 사찰의 불교의식이 통일 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도 <신편 팔상록> <영험실록> <십지행록>도 발간했다.
 
사찰의 역사를 기록한 사지(寺誌) 편찬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1927년 <봉선본말사지>를 시작으로 1937년 <도봉산 망월사지> <삼각산 화계사 약지>, 1942년 <유점사 본말사지> <전등본말사지> <동남산 미타사 약지>, 1943년 <봉은본말사지>, 1958년 <안양사지> 등을 간행했다. 약지(略誌)는 ‘간략하게 줄여 정리한 책’이란 뜻이다. 이밖에도 안변 석왕사, 장성 백양사, 문경 김룡사의 본말사지도 편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온전한 원고로 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해방 후인 1947년에는 서울 보문사에 개설된 비구니전문교육원에서 내전을 강의했다. 평생 역경과 저술로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폈던 스님은 1965년 2월22일(양력) 오전3시 조용히 원적에 들었다. 세수 85세. 장례는 3일장으로 거행됐으며, 서울의 한 화장장에서 쓸쓸한 가운데 다비를 했다.
 
 
[불교신문 2572호/ 11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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