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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경전과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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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만경] 여래장과 번뇌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곧 법계장(法界藏), 법신장(法身藏), 출세간상상장(出世間上上藏), 자성청정장(自性淸淨章)입니다. 이 성품은 청정한 여래장인데 객진 번뇌(客塵煩惱)와 부수적 번뇌의 오염되는 바로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여래의 경계입니다. 왜냐하면 찰나의 착한 마음은 번뇌에 물들지 않고 찰나의 착하지 않은 마음 역시 번뇌에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뇌도 마음에 접촉하지 않고 마음도 번뇌에 접촉하지 않으니, 사물[法]에 접촉하지 않는데 어떻게 마음을 물들일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러나 번뇌가 있으며 번뇌에 물드는 마음도 있습니다. 본래부터 청정한 마음[自性淸淸心]이면서 물드는 것이 있음은 가히 잘 알기 어렵습니다. 오직 부처님 세존만이 진실한 눈, 진실한 지혜로써 법의 근본이 되고, 법..
[승만경] 생사는 여래장에 의지한다 "세존이시여,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래장이기 때문에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것[本際]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생사를 설하는 것은 잘 설하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세존이시여,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은 모든 감각 기관이 사라지고[諸受根沒] 이어서 일어나지 않았던 감각 기관이 일어나는 것[次第不受根起]을 생사라고 이름합니다. 세존이시여, 죽음과 태어남의 이 두 법은 여래장입니다. 세간의 언어로 설하기에 죽음이 있고 태어남이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감각 기관이 부서지는 것이며[死者謂根壞], 태어남은 새로 감각 기관이 일어나는 것[生者新諸根起]입니다. 여래장은 태어남이 있으며 죽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래장은 함이 있는 현실[有爲相]을 떠나 있습니다..
[승만경] 여래의 청정한 법신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다 "왜냐하면 여래의 법신은 곧 완전한 상주[常波羅蜜], 완전한 기쁨[樂波羅蜜], 완전한 아[我波羅蜜], 완전한 청정[淨波羅蜜]이니, 부처님의 법신에 대하여 이러한 견해를 갖는 것을 올바른 견해라고 이름합니다. 올바르게 보는 자[正見者]는 곧 부처님의 참된 아들[佛眞子]이니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태어나며[從佛口生], 올바른 가르침을 좇아서 태어나며[從正法生], 올바른 가르침의 교화를 좇아서 태어나며[從法化生], 가르침의 재산을 상속[得法餘財]하는 사람입니다. 세존이시여, 청정한 지혜라는 것은 모든 아라한, 벽지불의 지혜 바라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청정한 지혜는 비록 청정한 지혜라고는 하지만 저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에 있어서도 작용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네 가지 의지의 지혜[四依智]에 작용하겠습니까. 왜냐..
[승만경]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은 전도된 견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不思議是滅諦]입니다. 모든 중생의 심식(心識)으로 헤아릴 수 있는 대상을 넘어서 있는 것이며, 또한 모든 아라한, 벽지불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비유하면,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은 갖가지 형상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이제 태어난 지 7일되는 아기가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 역시 이와 같아서 모든 범부의 심식으로 헤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또한 이승(二乘)의 지혜가 미칠 수 있는 경계도 아닙니다. 범부의 심식이라는 것은 극단적인 견해[二見]로 뒤바뀐 것[顚倒]이며, 모든 아라한, 벽지불의 지혜는 곧 청정(淸淨)합니다. 치우친 견해[邊見]라는 것은, 범부가 몸과 마음의 다섯 ..
[승만경] 괴로움의 소멸만이 제일의 의지처[一依章] "오직 하나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苦滅諦]리만이 함이 있는 현실[有爲相]을 떠나는 것입니다. 함이 있는 현실을 떠나는 것은 곧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허망한 존재가 아닙니다. 허망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진리이며 영원한 것이며 의지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만이 제일의의 진리입니다."
[승만경] 하나의 영원한 진리[一諦章] "세존이시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서 셋은 무상하고 하나는 영원한 것입니다[三是無常一是常]. 왜냐하면, 세 가지 진리는 함이 있는 현실[有爲相] 속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이 있는 현실 속에 포함된다는 것은 곧 무상(無常)한 것입니다. 무상한 것은 곧 허망한 존재입니다. 허망한 존재라는 것은 진리도 아니며, 영원한 것도 아니며 의지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非諦非常非依] 그러므로 괴로움이라는 진리[苦諦],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集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진리[道諦] 등은 모두 제일의의 진리[第一義諦]가 아닌 것이며, 영원한 것도 아니며, 의지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승만경] 공의 두 가지 진실한 모습[空義隱覆眞實章] "세존이시여, 여래장의 지혜는 여래의 공(空)한 지혜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장은 모든 아라한, 벽지불, 대력(大力)보살이 본래 보지 못하는 바이며 본래 얻지 못하는 바입니다. 세존이시여, 두 가지 여래장의 공한 지혜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공한 여래장(空如來藏)은 모든 번뇌의 더미에서 혹은 떠나 있으며[若離], 혹은 벗어나 있으며[若脫], 혹은 그것과는 다른 것[若異]입니다. 세존이시여, 공하지 않은 여래장[不空如來藏]은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도 더 많은 부사의한 불법을 혹은 떠나지 않으며, 혹은 벗어나지도 않으며, 혹은 그것과 다르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두 가지 공한 지혜는 모든 위대한 성문들도 능히 여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모든 아라한, 벽지불의 공한 지혜는..
[승만경] 존재의 소멸이 괴로움의 소멸이 아니다 "세존이시여, 존재의 소멸[壞法]을 괴로움의 소멸[苦滅]이라고 이름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하는 것은, 비롯함이 없고[無始], 지음이 없으며[無作], 일으킴이 없고[無起], 다함이 없으며[無盡], 다함을 떠나 있으며[離盡], 상주[常住]하며, 자성이 청정[自性淸淨]하며, 모든 번뇌의 더미[一切煩惱藏]를 떠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더 많으며[過於恒沙], 떠나지도 않고[不離], 벗어나지도 않으며[不脫], 다르지 않으며[不異], 헤아릴 수 없는 불법을 성취[不思議佛法成就]하여 여래의 법신을 설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여래의 법신[如來法身]은 번뇌의 더미를 떠나지 않으므로[不離煩惱藏] 여래장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