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능파교 건너면 부처님 세계
능파교 건너 세상의 어려움 극복하고
십바라밀 수행으로 불보살 될 수 있고
염불로 극락왕생 수행하기 딱 좋은 절
‘나무아미타불’ 염불수행 31명 육신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상품상생’했다는
등공유적기념탑이 절 북쪽 2km쯤에 …
강원도 고성 건봉사 능파교(凌波橋)는 세파(世波)를 건너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를 의미한다. 건봉사는 계곡을 중심으로 우측 대웅전 구역과 좌측 적멸보궁 구역을 능파교로 연결했다.
금강산은 중국 북송대의 시인 동파거사 소식(蘇軾)이 “고려국에 태어나 한 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그만큼 아름다운 금강산 속에 포근히 안긴 사찰이 강원도 고성 건봉사이다. 허균은 “건봉사는 어디 메냐 금강산 속이로구나(乾鳳寺在金剛山)/높은 구름사이 꽃 궁전 푸르고 아득한데(花宮卿雲間)/그 가운데 선승 있어 백옥같은 모습이라(中有禪僧玉雪姿)/혜원선사와 짝하고자 일찌감치 집 떠났네(棄家早伴東林師)”라고 건봉사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염불만일회 결성한 최초 사찰
건봉사는 520년 고구려 아도화상이 원각사로 창건, 신라 말 도선국사가 서봉사(瑞鳳寺)로, 고려 말 나옹화상이 중수하여 건봉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세조가 1465년에 행차하여 원찰로 삼은 뒤 1000여 명이 머무르는 대찰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모두 불타고 불이문(不二門)만 남았었는데 1990년 이후 재건하여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 수행한 31명의 상품상생을 상징하는 ‘등공유적기념탑’ 탑돌이 모습.
건봉사의 건(乾)은 하늘이고, 봉(鳳)은 봉황으로 곧 하늘을 나는 봉황의 절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출요경>에 “저 허공을 나는 봉황은 발자취가 없는 것처럼 가고 오며 돌아다녀도 일정한 처소가 없다”하여 봉황이 하늘을 나르듯 생사의 자취 또한 두지 않는 곳이 건봉사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건봉사는 758년 신라 발징화상(發徵和尙)의 주도로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다.
787년에 만일(萬日)동안 오직 ‘나무아미타불’ 염불 수행한 31명의 육신이 허공으로 올라 상품상생했다는 ‘등공유적기념탑(騰空遺蹟紀念塔)’이 절의 북쪽 2km쯤에 있어 그 사실성을 높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때 시작된 염불만일회는 이후 고려와 조선에 걸쳐 이어왔고 근대에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건봉사에는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뭇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었다.
‘나무아미타불’ 석주 위에 봉황이 …
나무아미타불 석주와 봉황.
건봉사 입구의 불이문(不二門)은 1920년 건립되었는데 모든 중생이 하나임을 알려주는 일주문이다. 불이문은 상호 대립의 차별을 끊어야 진정 부처님의 세계에 이른다는 의미로 세워진 문으로, 4개의 돌기둥에 삼고(三股) 금강저를 새겨둠으로써 금강문(金剛門)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금강저는 외부의 적을 무찌르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번뇌를 무찔러 보리심을 일으키는 내면의 무기로 그 의미가 크다. 불이문을 지나면 큰 바위에 솟아오른 ‘나무아미타불’ 석주 위에 봉황이 웅크리고 있어 염불의 도량이 건봉사임을 알게 한다.
심산유곡에 있는 사찰은 산세가 높고 계곡이 험한 지형에 다리를 놓아 사찰의 규모를 넓혀 갔다. 건봉사는 계곡을 중심으로 우측 대웅전 구역과 좌측 적멸보궁 구역을 능파교(凌波橋)로 연결했다. 적멸보궁 구역에는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세존사리탑이 있어 참배객이 늘 끊이질 않는다. 부처님의 사리를 건봉사에 모시게 된 연유는 사명대사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는 건봉사에서 처음으로 의승군(義僧軍)을 모집하였다.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로 여겨 악마와 원수의 힘을 항복 받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의승군 약 5000여명을 지휘하여 평양성을 탈환하는 등 오로지 백성을 위하여 왜적을 물리쳤다.
건봉사가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임을 말해주는 석가불치상립탑과 탑비.
진신 치아사리탑 모신 적멸보궁
전쟁이 끝나자 선조 37년(1604)에 평화교섭차 일본에 건너간 사명대사는 일본에 잡혀간 3500여명의 포로와 양산 통도사에서 왜적에게 강탈당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되찾아 1605년 부처님의 진신치아사리 12과(顆)를 건봉사에 모시게 되었다. 1726년 건봉사 낙서암(樂西庵) 서쪽 기슭에 ‘석가불치상립탑(釋迦佛齒相立塔)’과 ‘탑비(塔碑)’를 조성함으로써 적멸보궁이 되었다. 진신치아사리 5과는 보안원에서 불자들에게 별도로 친견할 수 있게 했다.
<별역잡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단이라는 천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하면 거센 물을 건너서 밤낮으로 항상 정진하겠습니까? 누가 그 깊은 흐름에 있으면서도 떠내려가거나 빠지지 않겠습니까?”하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온갖 계율을 완전히 갖추고 선정과 지혜가 마음에 차 있고, 내면의 마음과 생각을 잘 닦으면 그는 건너기 어려운 것을 건너리라. 애욕에 대한 상념을 제거하고 존재와 번뇌의 흐름을 건너서 기뻐하고 애착하는 존재를 없애면 깊은 데 있으면서도 빠지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세파(世波)를 건너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곳이 바로 건봉사 능파교(凌波橋)이다.
많은 사람이 신선이 물 위를 사뿐히 걸어가는 미인의 몸매와 고운 자태를 가리키는 ‘능파선자(凌波仙子)’라는 말에서 ‘능파’라고 한다. 그러나 사찰이 미인의 고운 자태와 무슨 상관있으랴. 다리 이름의 능(凌)은 ‘능가하다’ ‘건너다’의 뜻이고, 파(波)는 ‘물결, 파도가 일어나다’의 뜻으로, 능파교는 능히 세상의 파도를 건너는 ‘피안의 다리’라는 의미이다. 능파교는 1708년 신계스님이 만든 보물로 다리의 비는 청안스님이 글을 썼다. 다리는 길이 14.4m, 높이 5.8m, 폭 3.1m로 27개의 긴 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축조하여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2005년 보수하는 과정에서 너무 반듯반듯하게 돌을 갈아서 자연적인 멋이 없어졌다. 세파에 시달린 옛 능파교의 멋이 줄어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십바라밀 상징 문양이 새겨진 석주.
다른 사찰에선 볼 수 없는 ‘십바라밀 석주’
능파교를 건너면 들어가는 초입 양쪽에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십바라밀(十婆羅蜜) 석주가 있다. 중생이 능히 욕망의 파도를 넘어 십바라밀을 행하면 불보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십바라밀 도형에서 보름달은 보시바라밀을, 상현달은 지계바라밀, 신발은 인욕바라밀, 가위는 정진바라밀, 구름은 선정바라밀을 나타낸다. 지혜바라밀은 금강저, 방편바라밀은 좌우 2개의 원, 원바라밀은 상하 2개의 원, 역바라밀은 원 속에 원과 사각, 지바라밀은 큰 원 속에 작은 원 3개로 표현하였다.
능파교를 지나 세속적인 마음의 때를 벗고 십바라밀을 행하여 보살이 되고, 부처님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알려준다. 건봉사는 능파교를 건너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십바라밀 수행으로 불보살이 될 수 있고, 염불로 극락에 갈 수 있는 수행하기 좋은 절이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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