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암 적멸보궁 세존사리탑. 설악산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기에 높이가 1248m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라고 한다.

해발 1244m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뜻은?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불편함은 하룻밤의
특별한 수행이 되기도 했다
새벽 세존사리탑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지심귀명례’ 예불을 올리니 초롱초롱한
별들과 찬바람은 묵은 번뇌를 어둠과 함께…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만해 용운(卍海龍雲, 1879~1944)선사의 시 ‘알 수 없어요’의 일부이다. 선사는 ‘알 수 없음’을 역설하여 님은 조국이며 백성이며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선사는 민족 33인의 대표로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수많은 시로 남겼다. 특히 인제 백담사는 선사가 발심하여 머리를 깎은 곳으로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하여 조선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사찰이다. 백담사는 내설악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곳에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 자장율사가 세웠다. 이후 거듭된 화재로 절이 남아나지 않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느 날 스님의 꿈에 설악 산신령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이곳 절까지 물웅덩이 숫자를 절 이름으로 하라’고 일러주어 백담사(百潭寺)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그 뒤 화재는 사라졌지만 어찌 화재예방 차원 뿐이겠는가? 물웅덩이라는 다양한 중생의 마음에 부처님이란 물을 담아주어 중생의 갈증을 풀어주는 곳이 바로 백담사이다. 수심교(修心橋)를 건너면 금강문, 백담사 편액이 걸린 솟을대문의 삼문, 가늘게 하늘로 치솟은 고려후기 삼층 불탑과 극락보전이 일직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극락보전엔 보물로 지정된 영조24년(1748)에 조성한 목조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단정한 얼굴, 가늘게 뜬 눈, 당당한 어깨, 넓은 무릎, 하품중생인의 손 모습은 자비가 서려 있다.


‘님의 침묵’ 탈고한 유서 깊은 백담사
극락보전 옆 화엄실(華嚴室)은 만해스님이 일제에 항거하며 ‘님의 침묵’을 탈고한 민족의 정기가 서려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국민의 분노로 2년간 귀양살이를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1980년 5월18일 광주민주화항쟁 때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7년 동안 국가를 찬탈하여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가 거처한 화엄실은 무수한 아름다운 꽃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의미하는데 꽃 같은 청춘을 악랄하게 총칼로 쓸어버린 자가 화엄의 의미를 알까? 그가 살아생전 살생의 잘못을 뉘우쳤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로 인해 그가 받을 지옥의 과보를 <지장보살본원경>에서는 “혹 어떤 지옥에서는 죄인의 혀를 뽑아 소가 밭을 가는 쟁기로 쓰고, 혹 어떤 지옥에서는 끓는 가마에 죄인의 몸을 찌기도 하고, 혹 어떤 지옥은 절구로 빻아 가루로 만들기도 한다”고 했다. 이것은 염라대왕이 주는 벌도 아니다. 참회하지 않는 자가 스스로 받는 지옥의 고통이다.
수많은 불자들의 최고 순례지 봉정암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수많은 불자들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적멸보궁 봉정암을 순례한다. 편도 약 13km, 8시간의 여정이다. 그래도 영시암까지의 평탄한 길은 인생으로 치면 대학 나오기 전까지 부모의 도움으로 힘든 것을 모를 때와 같아 걷는 길이 즐겁고 상쾌하다. 영시암에서 오세암으로 오르는 길은 힘들지만 대학을 나와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할 때쯤으로 생각된다. 산은 한번 오르면 내려오기도 힘들 듯, 이때 인생 설계변경 또한 어렵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오세암은 선덕여왕 12년(643)에 관음암으로 창건되어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렀고, 1548년에는 불교의 부흥을 꾀하다 순교한 허응당 보우(普雨)대사가 중건했다.

1643년에는 설정(雪淨)스님이 다시 중건 후 관세음보살의 가피처(加被處)가 되었다. 당시 설정스님은 다섯 살 난 동자를 남겨두고 양식 준비를 위해 마을로 떠난 뒤 폭설에 갇혀 여러 날 뒤에야 관음암에 올라가니 굶어 죽은 줄만 알았던 동자가 살아 있었다고 한다. 동자는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엄마가 법당에서 내려와 놀아주고 밥을 주었다고 했다. 동자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을 의심해 본적이 없었기에 이런 불가사의한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오세암은 39세의 만해선사가 1917년 겨울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50~60대 인생 같은 길
봉정암 가는 길은 힘이 들수록 부모님이 고맙고 자식이 보고 싶어지는 힘든 50~60대 인생과 같다. 이젠 모든 것을 용서하고 또한 용서를 빌며, 산을 오르는 것이 기도이고 불보살님의 응답이다. 멀리서 들리는 봉정암 목탁소리는 구원의 메시지였다. 마지막 험한 바위 틈을 올라서자 펼쳐지는 불국정토. 발아래 보이는 높고 험한 산, 개미처럼 기어서 올라온 곳이 바로 불국토였다. 적멸보궁, 우뚝 솟은 세존사리탑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리이다. 자장율사가 가장 높은 해발 1244m에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뜻을 알 것 같다. 부처님이 계시는 이곳을 참배하여 참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과 능히 참고 살면 중생이 부처가 되는 제일 빠른 길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찬란한 오색 빛이 스며들며 봉황이 길을 인도한 곳에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12년(643)에 불탑을 세워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봉정암이라 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세존사리탑
적멸보궁 세존사리탑의 기단은 설악산 바위를 그대로 사용하여 5층의 탑신(塔身)을 올렸기에 높이가 1248m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다. 바위 윗면은 연꽃을 새겨 부처님의 사리를 받들었고 5층 탑신과 지붕, 상륜 보주는 수직 상승감으로 희유하신 세존을 탑으로 보여준다. 또한 사리탑 아래 펼쳐진 깎아지른 절벽과 대경봉(戴經峯)은 무수한 중생들이 경전을 머리에 이고 끝없이 부처님을 공경 찬탄하는 모습이라 말로 전할 수 없는 적멸보궁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준다.
예전의 봉정암에서의 하룻밤은 수많은 참배객으로 숙소는 발 딛을 틈이 없었다. 누울 자리는 길이 1.2m, 폭 30cm라 다리는 꼬부리고 어깨는 옆으로 세우는 ‘칼잠’을 잤다.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불편함은 하룻밤의 특별한 수행이 되기도 했다. 새벽에 세존사리탑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예불을 올리니 초롱초롱한 별들과 찬바람은 묵은 번뇌를 어둠과 함께 사라지게 한다. 여명(黎明)! 하룻밤을 무사히 보낸 새들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조잘거린다. 삼라만상이 육근(六根)에 들어오는 적멸보궁의 아침, 매일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환희로 부처님을 맞이해야겠다.
봉정암은 멀리 세속을 벗어났으나 부처님은 세속을 버리지 않으셨다.
[불교신문 3717호/2022년5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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